[연명의료①] 인생을 마무리하는 지혜

노로돔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의 장례 행진이 프놈펜 거리를 지나고 있다. 시아누크의 장례는 거리행진이 끝난 뒤 화장으로 치러졌다. <사진=AP/연합뉴스>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 박사]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준비하며 “삶에서 멀어질수록 진리에 가까워진다”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가 진리에 가까워지려면 죽음에 가까워져야 하므로 죽음은 전혀 두려운 게 아니라는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1828-1910)는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8월 일본 도쿄에서 제4회 엔딩산업전(Life Ending Industry Expo)이 열렸다. 일본의 ‘엔딩시장’은 생전에 자신이 죽음을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활동인 ‘슈카쓰’(終活) 개념이 보편화되면서 확대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엔딩산업’은 군자(君子)의 죽음은 종(終)이며, 종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함을 전제하고 있다.

이에 죽음은 비록 슬픈 일이지만 저세상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관점으로 보면 기쁜 일이므로 즐겁고 화려한 장례식과 묘역(墓域)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즉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모두가 행복한 장례가 되어야 한다. 일본의 묘역은 좁지만 흙 봉분 대신 석조묘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묘지가 산속이 아니라 도심이나 마을 언저리에 있어 산 자과 죽은 자가 공존한다.

몇 주 전 일요일 오후에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 전문상담사 3명이 연세대학교회를 방문하였다. 각당복지재단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이다. 예배가 끝난 후 교인들에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즉, 연명의료(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중단을 항목별로 결정하고, 호스피스의 이용 계획 의향(있음/없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여러 명이 의향서에 동의하고 서명을 하였다.

‘심폐소생술’은 심장마비가 발생하면 심장박동과 호흡이 멈추면서 온몸의 혈액 공급이 중단되는데, 이때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을 시행함으로써 정지된 심장을 대신해 심장과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응급처치법이다. ‘혈액 투석’(透析)은 혈액 속의 노폐물을 걸러내 소변으로 배출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신장(콩팥)에 이상이 생긴 말기 신부전 환자에게 의료기기를 사용하여 혈액 속 노폐물이 배출되게 하는 의학적 시술이다.

‘항암제투여’는 암을 축소, 억제 제거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의학적 시술로, 암의 종류와 진행 정도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항암제는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세포에도 손상을 입히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다. ‘인공호흡기 착용’은 스스로 정상적인 호흡을 할 수 없는 호흡부전 환자에게 인공적인 방법으로 호흡을 도와주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기도 확보를 위해 튜브를 삽입하는 기관 내 삽관이 필요한데, 이는 환자에게 상당한 고통과 통증을 유발할 수 있기에 진정제 및 진통제 등의 약물이 함께 사용된다.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각종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수명을 연장시켰지만 인간은 누구나 삶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을 피할 수 없다. 2016년 우리나라 총 사망자 28만명 중 약 75%인 21만명이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의학적으로 소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도 생명 연장을 위한 시술과 처치를 받으며 남은 시간의 대부분을 고통스럽게 보낸다.

이른바 ‘김 할머니 사건’ 이후,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가 점차 확산되었으며, 2013년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구체적 절차와 방법을 제시하며, 연명의료에 관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권고했다. 이에 2016년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단계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따라 연명의료결정제도가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즉,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고 있다고 의사가 판단한 경우라면, 환자의 의향을 존중하여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이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둘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19세 이상의 사람이 향후 겪게 될 임종단계를 가정하여 연명의료에 관한 자신의 의향을 미리 밝혀두는 문서이다. ‘연명의료계획서’란 말기환자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와 같이 가까운 시일 내에 임종할 것으로 예측되는 환자가 담당의사와 함께 연명의료에 대한 사향을 계획하여 남겨두는 문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반드시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사정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2018년 2월 4일 현재 총 49개 기관이 운영)의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작성하여야 하며, 작성된 내용은 연명의료 정보포털(www.LST.go.kr)에서 개인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하여 조회할 수 있다. 그리고 작성자는 언제든지 그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병원 의사들이 임종기(臨終期) 환자에 대한 의료계획서 작성을 꺼리고 있는 이유는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의료계획서를 작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즉, 의사들이 의료계획서를 작성할 때는 3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두번 정도는 인터뷰 하는 것을 기대했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에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환자 자신의 입장을 밝혀놓는 것이 오히려 쉽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육은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에 집중되어 있고, 죽음이 임박한 환자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한 채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생명의 연장과는 배치되더라도 최대한 고통을 줄여주는 방법을 찾아본다든지 하는 측면에서는 훈련이 부족하다. 의료행위와 달리 환자의 심리나 인격체로서의 존중 등은 교육 내용이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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