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백중’ 이종암 “저 커다란 달꽃 한 송이 내 속으로”
늦은 밤 방문을 열고 나오다가
하늘에 떠 있는 살빛 꽃 한 송이를 보았다
엷은 구름 속 보름달이어서
그 모양 갖가지로 보이는데
고향집 툇마루에서 허허 웃고 있는 아버지가 거기에 있고
나 때문에 삐쳐 토라진 동생이 있고,
6?25때 운문산 어디에서 전사하였다는 삼촌도 있고,
왜정 때 일본에서 객사하였다는 우리 할아버지도 있는데
저 커다란 달꽃 한 송이 내 속으로 자꾸 건너오고
살빛 속으로 내가 마구 스며드는 것은
그래, 피의 일은
멈춤 없이 속수무책 흘러흘러 내려오는 것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