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육사 생도 퇴교 사건 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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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최승우 전 예산군수, 전 17사단장] 1986년 여름 육사 교장실. 생도대장으로 학교장께 생도에 관한 문제로 구두 보고하는 자리에 교수부장이 함께 배석해 있었다. 학교장은 과거 내가 중대장 시절 대대장으로 모셨던 분으로 나의 개성 즉 ‘어느 상급자에게도 할 얘기는 분명히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파악하고 계신 분이었다. 교수부장은 내가 생도시절 교수부 교관으로 갓 부임했던 분으로 귀엽다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내가 매우 좋아했던 선배다. 세월이 흘러 교수부장과 나는 준장으로 같은 계급을 달고 있었다. 구두 보고였지만 모두에 개요 보고가 끝나자 학교장은 결론부터 지시했다.

“생도대장, 000생도를 당장 퇴교 심사위원회에 회부하여 퇴교 시키시오.”

“교장님, 그 생도를 퇴교시킬 수 없습니다.”

“아니, 무슨 말이요? 퇴교시키시오.”

“퇴교 못시키겠습니다.”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려고 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교수부장이 말은 못하고 눈짓 손짓으로 명령에 따르라는 내게 강력히 주문했다. 당시에는 왜 그리도 야속했는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양손의 손바닥을 펴고 그분을 향해 장풍을 보내는 식으로 팔을 펴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교수부장님은 좀 가만히 계십시오. 이제부터 저도 할 말씀은 드리겠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교수부장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나는 조용히 앉아서 학교장을 향해 말을 시작했다.

“교장님,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명령을 거역한다는 뜻이 아니고 저는 분명히 그 생도를 퇴교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뭐라고?” 학교장은 매우 흥분하는 상태였다. 그분도 매우 다혈질 성격이며 목소리 톤이 높은 분으로 하급자들은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그 분의 마음을 거슬리려는 사람은 군에서 별로 없었다.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았다. 생도들의 여름철 군사훈련 기간에 학년별로 각 지역에서 훈련을 받던 중 주말 외박에서 사건의 발단이 일어났다. 고속버스터미널에 생도대 장교가 서있었고 마침 그 옆에 제복을 입은 생도가 있었다. 그때 20-30미터 거리에서 사복을 입고 지나가던 젊은이들에 대해 생도가 손짓을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장교도 시선이 그리로 갔고 무엇인지 감을 잡았던 것이다. 장교는 생도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생도는 자신은 답변할 수 없다고 했고 장교는 생도에게 신상에 좋지 않으니 그 젊은이들에 대한 인적사항을 말하라고 재차 요구했다. 하지만 생도는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버텼다. 장교는 그렇다면 퇴교될 수도 있다고 재차 경고했다. 생도는 그럼에도 이름을 댈 수 없다고 했다. 장교는 “그러면 귀대 후 얘기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장교는 귀대 후 생도를 불러 재차 확인했다. 생도는 처벌 받을 각오하고 동기생을 자기 입을 통해 팔지 못 하겠다 했다. 그러면서 조사를 해서 확인해주기 바란다는 소견을 밝혔다. 결국 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그 두 사람은 생도였으며 사복은 사전에 준비해서 어느 격에 안 맞는 장소에서 갈아입었고 음주까지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같이 상황이 밝혀지자 관련자들을 모두 퇴교시키라는 지시가 나오게 된 것이다.

“교장님, 퇴교는 생도대장의 소관업무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건방지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생도는 죄가 있다면 단지 현장에 있었다는 죄이고 제 생각으로는 의리가 있는 젊은이로서 사복을 입은 자기 동기생을 고자질하고 팔아먹는다는 자책감에서 자신의 퇴교 위험을 감수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저로서는 그 의기를 칭찬하고 싶습니다. 말만 하면 자신은 위험권에서 벗어날 줄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한 것은 당시 생도 입장에서는 바로 정의의 길로 생각을 했을 것이고, 저는 그 기상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 생도는 평소에도 모범생이었으며 제가 만약에 생도시절 그 생도 입장이었다면 저도 분명히 똑같이 행동했을 것입니다. 교장님 역시 그랬을 것으로 봅니다.”

“생도대장. 왜 나를 그런데 끌어들이나?”

“예, 젊은이로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생도대장! 당신 생각이 글러먹었어. 생도대장이 이 모양이니 생도들이 닮아서 다 그 모양이지.” 나는 순간 분이 치밀었다.

“교장님, 제 생각이 글러먹었다고 말씀하시는 교장님 생각이 글러먹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뭐야?”

“예, 교장님 오늘 저녁은 마침 보름달이 뜨는 날입니다. 화사한 보름달을 보고 장가가는 총각은 얼마나 기분이 좋고 달이 아름답게 보이겠습니까? 그러나 실연한 처녀가 본다면 그 달은 비참한 ‘비운의 달’로 보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같은 장소에서 보는 같은 보름달이라도 보는 관점이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처녀나 총각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모두 옳을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장님의 생각만 옳고 제 생각은 글러먹었다고 하신 교장님의 생각도 글러먹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야, 생도대장, 당장 나가!”

“예, 나가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소신은 변함없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거수경례로 예의를 취하고 돌아서 나왔다. 물론 나도 기분이 몹시 상했다. 나는 생도대장실로 돌아와서 연대장, 대대장과 해당 훈육관들 불러서 지시했다.

“그 생도 문제는 학교장님 지시가 있다 해도 내 서명이 없는 한 절대로 퇴교될 수 없다. 나는 그런 생도는 절대로 퇴교시켜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에 서명을 절대 안 할 것이다. 이후 학교장님의 강력한 지시가 있겠지만 나는 계획대로 제주도 훈련지역을 다녀올 것이다. 내 나름대로 복안이 있으니 퇴교문제는 보류다.”

또 한편 학교장에 대한 보고 내용의 지침을 분명히 했다. 퇴교 문제로 격론을 벌였던 그 생도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ooo생도는 본인이 퇴교대상자로 확정 단계에 있음을 알면서도 퇴교 확정 때까지는 200km 행군 훈련은 끝까지 받겠다고 했으며 평소에도 모범생도였지만 이러한 훌륭한 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훈련에 참가시켰다는 사실”을 생도대장 부재중 주요 업무보고 사항으로 학교장께 보고할 것을 지시하고 계획된 제주도 훈련장 순시를 떠났다.

학교장은 성격은 괄괄하고 큰소리치는 분이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와 동정심도 내심 많고 옳고 그름의 기준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분이었다.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기에 시간의 흐름과 그분에게 양보할 수 있는 명분을 드리면 대립 없이 문제해결을 쉽게 할 수 있겠다고 나름대로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제주도를 다녀와서 퇴교문제는 해결되었다.

조사결과 생도의 품위에 크게 어긋나는 행위를 했던 2명의 생도는 퇴교조치 되었지만 그 생도는 생도대장인 나의 최초 의도대로 퇴교시키지 않고 생도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장께서도 충분히 공감을 했던 것이다.

인재는 어느 한계까지는 잘 육성되어야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다. 책임만을 물어서 그리고 어느 일방적 기준틀에 안 맞으면 일사분란하게 치고 자르고 보는 식의 풍토에서는 인재는 육성되기 어렵다. 개인의 독특한 개성이 인정되어 각기 다른 개성들이 다양성 가운데 역할을 다하며 필요에 따라 통일된 모습으로 지향하는 게 발전하는 조직의 모습이다. 조직사회는 단순 획일성 통일보다 다양성 가운데 통일돼야 생명력이 강하게 된다.

군에서도 아쉬운 것은 초급장교시절에는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행동을 하게 되며 이로 인해 아까운 떡잎들이 펴보지도 못하고 청운의 뜻을 접고 사라졌든 예가 흔히 있었다. 무릇 상급자들은 이런 면에서도 차원 높은 고민을 해야 하고 일방적인 처벌이 능사가 아니란 걸 느껴야 한다.

지난 얘기지만 내 경우, 나의 개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해 주었던 상급자들이 있었기에 군에서 성장 발전했으며 어떤 역할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상관에게 직언을 하거나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을 건방지다고 판단했으면 나 같은 사람은 일찍 군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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