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줏간 주인과 다산 정약용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두 사람이 고기를 사려고 푸줏간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은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여봐라, 고기 한 근만 다오.” “예, 그러지요” 함께 온 다른 사람도 말했다. “여보게, 나도 고기 한근 주게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금 전보다 공손한 태도로 답변한 주인은 고기를 더 넉넉하게 잘랐다. 그러자 먼저 말한 사람이 화를 내며 “이놈아, 같은 근인데… 어째서 내 것보다 크게 자르는 것이냐?” “예, 별것 아닙니다. 손님 고기는 ‘여봐라’가 잘랐고, 이분 고기는 ‘여보게’가 잘랐을 뿐입니다.”

<참전계경>(參佺戒經) 제255事에 <주공>(主恭)이라는 말이 나온다. ‘주공’이란 공손함을 위주로 삼는 것을 말한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머무를 때에도 반드시 공손하고 온순하게 하여, 일을 할 때는 넘치는 물그릇을 드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하며, 사람들 대할 때는 중요한 것을 몸에 찬 것처럼 신중하게 한다.

이렇듯 삼가고 조심스럽게 믿음의 덕을 이루고, 나아가 명예로운 덕을 이루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맡고 있는 일과 지금 우리들이 만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공손함을 통해 정성을 다한다면 그 덕이 쌓여 향기로운 인품으로 드러날 것이다.

공손(恭遜)은 예의가 바르고 겸손함을 말한다. 그리고 공순(恭順)은 공손하고 온순하다는 뜻이다. 또 온순(溫順)은 부드럽고 어질며 고분고분하다는 뜻이다. 아마 이 모든 뜻을 합한 것이 ‘주공’이 아닐까 싶다. 주공은 사람의 가장 훌륭한 미덕(美德) 중의 하나다. 그러나 아무리 주공함이 훌륭한 미덕일지라도 예(禮)에 합당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래서 ‘과공은 비례’(過恭非禮)라고 한다. 지나치게 공순해 무례하면 비굴하게 되고, 비굴하면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못하고 남의 주장에 끌려 다니게 된다. 결국은 남의 지배를 받기 십상이다. 그리고 사람이 신중함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너무 신중해 무례하면 겁쟁이가 되고 만다. 이런 사람은 매사에 결단력이 부족하고 무엇을 하든지 주저하고 머뭇거려 결행의 때를 놓치기 쉽다.

이런 사람과는 대사(大事)를 도모할 수 없다. 위기가 닥치면 허둥대고 비겁하게 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감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신하가 용감하기만 하고 무례하면 역적이 되고, 장수가 용감하기만 하고 무례하면 패장(敗將)이 된다.

또한 강직한 것은 선비의 장점이다. 하지만 강직한 것이 지나치면 고집스럽고 아량이 없으며 매사에 여유가 없기 쉽다. 일을 처리함에 지나치게 경직돼 덕을 잃게 되고 원한을 사기 쉬운 법이다.

이와 같은 말들은 매사에 중용(中庸)을 좇아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를 시중(時中)이라 한다. 때에 맞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떤 경우에도 모자람도 넘침도 없는 중정(中正)의 인생이 최고의 삶이다. 공순한 이도, 신중한 이도, 용감한 이도, 강직한 사람도 꽤 많다. 그러나 이러한 덕(德)을 갖고 있으면서도 시중(時中)의 삶을 사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다.

행동의 기본은 마음과 몸가짐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평소 “발은 무겁게 하고, 손은 공손하게 가지고, 입은 다물어야 하고, 머리는 곧게 하고, 눈은 단정하게 가지고, 인상은 정숙하게 가지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할 줄 알고, 불가능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보기 위해 애쓰며, 다른 사람을 위해 호탕하게 웃어줄 수도 있고, 편안함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