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원교수의 재밌는 월드컵②] 누가 김민우에게 돌을 던지나

임국찬 선수를 기억하십니까?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의대 교수] 임국찬 선수를 기억하십니까? 어제 러시아월드컵 예선 첫 경기에서 스웨덴과의 실력차가 분명히 있음에도 대한민국 축구팀은 분전했으나 후반에 당한 페널티킥으로?1:0?분패했다.?페널티 박스에서의 경합 과정에서 김민우의 태클이 있었고 스웨덴의 클라에손이 넘어졌다.?

분명히 내가 보기에도 공을 향해 정확하게 들어간 훌륭한 태클인 것으로 보였으나,?이번 대회부터 도입된 비디오 판독 결과 김민우의 태클이 공을 건드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결국 페널티킥으로 실점했고 대한민국은 패했다.

김민우를 계속 비추는?TV화면을 통해서 나는?20대 어린선수인 김민우가 느낄 상심과 좌절에 가슴 아팠다.?인터넷 뉴스 중에는 장현수가 무리한 패스를 했고,?박주호가 부상으로 나가게 되었으며,?대신 김민우가 투입되어서 페널티킥을 당했으니,?장현수가 잘못했다는 그야말로 나비효과까지 나타난다.?점입가경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대한민국의 경기 상대는 멕시코다.?멕시코는?1970년 월드컵을 개최하고?16년만에?2번째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다.?이번 멕시코와의 대결을 앞두고 월드컵 얘기는 1969년 한 불행한 선수의 페널티킥을 다루려 한다. 1969년 멕시코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최종예선이 서울에서 열렸다.?각 조별 우승팀인 한국,?일본,?호주 간의?두번의 라운드를 통해서 최종 우승팀이 결정된다.?한국은 일본과 한번 비기고 한번은 이겼으며,?호주와는 첫번 대결에서 졌다.?그런데 일본이 뚝심을 발휘해서 호주와 비기는 바람에 최종 호주 전에서 한국이 이기게 되면 호주와 한국이?2승1무1패로 동률이 되어 한 번 더 호주와 결정전을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한국은 무조건 이겨야 하는 입장이었다.

대한민국은 전반에 선취골을 넣었으나 후반에 한골을 실점해서?1:1?상황에서 당시 아시아의 스트라이커 이회택에 대한 반칙으로 한국은 페널티킥을 얻었다.?그때 키커가 바로 임국찬이었다.?임국찬은 바로 차지 않고 공을 굴리면서 골키퍼를 유인하다 공을 찼으나 공은 이미 임국찬의 페이크 동작에 거의 넘어지고 있던 골키퍼로 향했다.

이러한 상황은 어디에서도 다시 볼 수 없는 나의 기억에 입각한 재현이어서 혹시 내가 잘못 기억할 수 있으니 이해해주시기 바란다.?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그 다음 얘기다.

뛰어난 미들필더로 촉망되던 임국찬의 축구 인생은 그것으로 끝이었다.?끝없는 비난에 시달리다 결국 임국찬은 몇 년 후 축구를 그만 두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현재?70대 후반의 임국찬은 최근 인터뷰에서 그간의 아픈 기억을 털어놓았다.

순간을 캡처한 모습이 진실인가 확률이 진실인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놀이에서 술래가 돌아보는 행위에 의해서 멈추어 있는 모습이 진실인가??일기예보를 확률로 얘기하면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틀릴 가능성을 내포했기 때문이다.?누구나 선한 행위도 하고 악한 행위도 한다.?단지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을 착한 사람,?악한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을 악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착한 사람도 어느 날 약간의 나쁜 행위를 하는 모습을 사진 찍어 전시하면 천하에 나쁜 사람이 된다.?우리가 확률적 그 사람의 모습을 알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육체 인간의 한계다.?그러나 우리는 안다.?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캡처해서 비난의 도구로 사용한다.?이것은 현재진행형이고 우리 사회의 아픈 위선의 모습이다.

임국찬 선수에 대한 비난과 김민우 선수에 대한 비난이야 말로 정말 비난받아 마땅하다.?악한 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사람은 누구나 실수하는데,?단지 그 실수가 중요한 순간이었다는 이유로 죄가 더 클 수 있을까??그런 비난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그 희생양이 나일 수도 있다.?예수께서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죽이려던 사람들에게, “죄없는 자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하였다.?결국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하고 돌아갔다.

월드컵은 축제다.?음악이고 시를 읊는 자리다.?축제에서 법조문을 읽지 마라.?축제는 아픈 자를 감싸주는 사랑의 자리다.?우리가 이기든 지든 훌륭하게 지면 박수치는 것이다.?우리는 아깝게 졌지만 투혼을 발휘했고 전혀 부끄럽지 않다. 10개가 넘는 유효슈팅 속에서 한골도 필드골을 실점하지 않은 것만으로 우리 수비진을 칭찬해야 한다.

우리가 요행으로 이기면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인가??누가?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9:0으로 대패하면서도 다리에 쥐가 나서 실려 나가며 사자와 같은 투혼을 발휘했던 우리의 위대한 선배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페널티킥을 실축한 선수에게 비난이 아니라 사랑으로 감싸 줄 정도로 우리 문화도, 의식도 성숙하지 않았는가? 이제는?축구경기를 보면서도 비난이 아니라 사랑을 생각하고 실천할 때다. 험하고 힘든 세상에서 비난만 하지 말고 우리 더 사랑하자. 서로 사랑으로 우리 아픈 마음을 위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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