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조오현의 선시조⑩] 대숲에 일던 바람은···어둠 속 타는 숨결

[아시아엔=배우식 시인]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한 내용이 사성제(四聖諦)다. 이중에서 첫번째인 고성제(苦聖諦)는 현실의 삶의 모습을 나타낸 것인데, 현실의 인생은 고(苦) 즉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그 괴로움의 원인은 갈애(渴愛: 집착과 애착)다. 사성제는 불교의 대표적인 진리인 동시에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이다.

내세에서 사후의 존재성이 현생에서의 행위(業)와 관련된다고 생각하는 인과사상(因果思想)이 명확하게 된다. 인과응보를 강조하는 불교에서는 오도(五道)와 그것에 아수라가 더해진 육도(六道)의 윤회사상이 체계화되었다. 그리고 이 윤회로부터 벗어나 재생하지 않는 것이 해탈·열반을 구하는 자의 목표가 된다.

그래서 조오현은 ‘삶’과 ‘죽음’에 대한 치열한 수행으로 얻는 깨침을 실천적 행위로 선시조를 통해 발표한다. 그는 중생들을 위해 생사 앞에서/면벽하고 앉아(「생사 앞에서」) 끊임없이 참선한다. 이는 중생에 대한 대자대비의 정신 때문임을 여러 작품을 통해서 읽는다.

“새 울음 소리를 듣고/해조음 소리를 듣고/내 울음 소리”(「헛걸음」)

“누군가 훌쩍거리는 그 울음도 날려보냈다.”(「재 한 줌」)

“산과 산이 울거나 바다와 바다가 울거나”(「머물고 싶었던 순간들」)

“소쩍새도 울다 가고”(「간간이 솔바람 불고」)

“성황당 고개 너머엔 울어예는 뻐꾸기.”(「봄」)

“솔밭을 울던 바람은”(「솔밭을 울던 바람은」)

“먼 바다 울음소리를/홀로 듣노라면”(「파도」)

“경칩, 개구리/그 한 마리가 그 울음으로”(「출정(出定)」)

“소쩍새 우는 공산(空山)에”(「선덕왕릉에서」)

“내 마음 허심한 골에/뻐꾸기는 우는데.”(「가는 길」)

“속살 깊이 울던 울음도/먹피로 삭아버리고”(「살갗만 살았더라」)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나도 웃는 허수아비”(「허수아비」)

“히히히 호호호호 으히히히 으허허허/하하하 으하하하 으이이이 이 흐흐흐/껄껄껄 으아으아이 우후후후 후이이”(「인우구망(人牛俱忘 – 무산심우도 8」)

흘리는 웃음기마저 걷어지르고 있는 거다.”(「뱃사람의 말」)

“어느 골 깊은 산꽃/홀로 피어 웃는 걸까”(「계림사 가는 길」)에

조오현 선시조에서 의성어가 출현하는 것은 ‘선시적 불립문자(不立文字)’의 문학정신이야말로 바로 그 소리에 대해 부단하게 천착한 배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시의 모태가 되는 울음도 당연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웃음과 웃음소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웃음’과 ‘웃음소리’, 그리고 ‘울음’과 ‘울음소리’는 각각의 작품마다 서로 다른 울림을 나타내며 존재한다. 인간의 말과 사물의 소리는 궁극적으로 그 존재가 살아 있음을 뜻하는 징표이다. 인간의 삶은 곧 말이고 사물의 소리는 곧 그 생명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의 말과 사물의 소리가 서로 섞여 하나의 선시조를 빚어내는 것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웃음과 울음, 이처럼 모든 대립적 경계선이 지워진 곳에 조오현 시학의 궁극이 깃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바람에 대한 표현을 보자.

“간간이 솔바람 불고”(「간간이 솔바람 불고」)

“대숲에 일던 바람은”(「솔밭을 울던 바람은」)

“비바람 우레 천둥엔”(「바다」)

“천경(千經) 그 만론(萬論)이 모두/바람에 이는 파도란다.”(「파도」)

“한 그루 목숨을 켜는 날이 선 바람소리”(「달마 4」)

“삶이란 바깥바람/죽음은 강어귀굽이”(「개사입욕(開士入浴)」)

“어둠 속 타는 숨결/솔바람도 잠이 들고”(「석등」)

이처럼 조오현의 선시조에는 ‘바람’이 분다. 삶과 죽음 사이 혹은 웃음과 울음 사이로 바람이 분다. 잔잔하게도 불다가도 파도를 일으키는 센 바람으로 분다. 바람은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자재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의 바람은 선적 지향성을 보여준다. 선적 수행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깨달음의 바람이다. 그 바람은 공(空)의 바다, 적멸의 바다에 도달하기 위한 바람이다. 적멸은 몰현금처럼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그것은 소리로만 존재한다. 조오현의 선시조한 바로 이러한 불가능성에 대한 바탕으로 성립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