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조오현의 선시조⑨] 만해 ‘님의 침묵’과 무산 ‘무설설’
[아시아엔=배우식 시인] 조오현 선시조의 가장 중요한 사상적 배경에는 반야공사상과 중도사상 그리고 불이사상 등이 있다. 이 사상의 중심에는 공(空)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조오현은 이런 ‘공(空)’사상의 시적 승화를 통해 개별적인 작품에서 자유와 평화 그리고 평등의 세계를 구현한다. ‘반야공의 자유세계’는 『반야경(般若經)』에서 말하는 공사상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세계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즉 ‘공(空)’의 세계를 나타내며, ‘절대의 경지’인 ‘공(空)’의 세계에서는 시공간이 없다. 그리고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은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깨치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말이다.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것을 깨친다는 것은 ‘나’의 공함을 깨친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중도(中道)의 평화 세계’는 용수(龍樹: N?g?rjuna)가 저술한 『중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이다. 그 세계의 중심사상인 중도란 ‘선종의 근본원리이며, 대립하는 두 극단(二邊)을 버리고 기울어짐이 없는 바른 도(道)’라는 의미다.
조오현 선시조의 많은 작품에서 이런 사상적 특징들이 나타난다. 또한 ‘불이의 세계’로서 대승의 기본은 ‘하나’인 진리에 있다. 이 절대한 ‘하나’인 진리를 불이법(不二法)이라고 한다. 세속과 열반, 부처와 중생 등 대립되는 것은 모두 ‘하나’인 바탕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하나’인 바탕은 다름 아닌 ‘깨침’에 있다. 깨침의 안목으로 모든 것이 둘이 아닌 평등한 세계이다. 이런 불이의 평등한 세계 역시 조오현의 작품 곳곳에 특징적으로 펼쳐져 있다.
조오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관계하여 존재하며, 결코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연기’를 ‘시적으로 승화’시켜 ‘팔불연기’의 세계와 ‘팔불중도’의 세계, 그리고 12연기의 세계를 깨침으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괴로움의 관찰인 ‘12연기’의 업을 끊고 무심의 경지에 들어 집착과 주처를 떠나는 시적 세계를 보여준다. 일체에 ‘무심’하면 열반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열반이란 실제 자성을 깨쳐 성불한 자리로 자유자재한 구경각을 말한다.
유식(唯識)에서는 ‘마음’을 여덟 가지(八識)로 구분하고 있다. 조오현은 이 팔식(八識)을 시적으로 승화하여 대원경지의 세계를 많은 선시조에 담고 있다. 불살생계(不殺生戒)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유정물을 해치지 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모든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불살생계는 생명의 존엄성을 알고, 이를 실천하는 삶의 자세를 요구한다. ‘불살생(不殺生)’을 실천하고 이를 시적으로 승화한 조오현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의 자비희사(慈悲喜捨)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조오현의 이런 사상적 배경으로 창작한 선시조는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삶과 죽음, 너와 나의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고 무화시켜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작품을 선보인다. 그리하여 우리를 고요한 성찰의 시간으로 인도한다. 조오현 선시조는 위에서 고찰한 사상을 중심으로 해탈의 경지에서 창조적 언어를 찾아 자신만의 독특한 선시조 세계를 창조한다.
조오현 작품의 배경이 되는 불교의 여러 가지 사상은 합리적 이분법적 사고와 고정불변성의 생각들을 끊임없이 깨뜨리고 무너뜨린다. 그리하여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시조세계의 경계를 돌파하고 초월하여 깊은 깨침의 선시조 세계를 새롭게 창조한다.
조오현 시학을 떠받치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원리는 오랜 시간 속에서 모든 개념적 경험적 경계선을 지워가는 일련의 통합적 사유과정에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오현의 선시조는 전혀 이질의 것들이 부딪쳐 예측할 수 없는 어떤 곳에서 불꽃을 일으키며 보여주는 선적인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시어에 ‘삶’과 ‘죽음’이 많이 나오고 ‘울음’과 ‘웃음’도 많이 등장한다. 조오현의 선시조에는 ‘바람’이 분다.
“내 삶은 철새련가”(「내일은 또 어느 하늘가」)
“그 삶이 어디로 가나/파도라 해요.”(「무설설 2」)
“삶이란 얼레미 논바닥/목마름은 끝없니더.”(「무설설 6」)
“삶이란 까불어내도/나가지 않는 지푸라기를.”(「진이(塵異)」)
“사실 이승의 삶은/그 모두 타향살이”(「타향」)
“죽음이 바스락바스락 밟히는 늦가을 오후”(「춤 그리고 법뢰(法雷)」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아득한 성자」)
“살아서 죽을 일 없으면 그냥 뒈져야지”(「악몽」)
“무수한 죽음 속에 빛깔들이 가고 있다.”(「빛의 파문」)
“세상을 산다고 하면”(「말」)
“살아도 살아봐도 세간은 길몽도 없고”(「달마 2」)
“입을 열면 다 죽는 것 열지 않아도 다 죽는 것”(「보수개당(寶壽開堂)」)
“한 사람 살아가는데 만 사람이 죽어 있구나”(「조주대사(趙州大師)」)
각각의 작품에서 말하는 ‘삶’과 ‘죽음’은 서로 다른 뜻을 나타내지만, 깨친 사람의 눈에는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 하나다. 불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