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회장 서거, 한국사회 새로운 품성·기풍·구상의 계기되길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기미년에 심산 김창숙은 유림의 대표였다. 기미독립선언에 유림이 한사람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보다도 참여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족대표 손병희는 동학의 최제우, 최시형을 잇는 천도교의 지도자였다. 김창숙은 견딜 수 없는 모멸감과 함께,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꼈다. 3·1운동 후 김창숙은 유림을 대표하여 조선독립청원서를 파리 평화회의에 제출하였다.

유학은 한 무제에 와서 국가를 경영하는 통치원리로 받아들여졌다. 그때까지 유학에는 고도한 형이상학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송나라에 들어와 불교 영향을 받아 중국에서도 같은 차원의 구조를 갖추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당시 한족은 거란, 여진, 몽골의 침략을 받아 양자강 이남으로 방축되었다. 한족은 말할 수 없이 위축된 자부심을 학문에서 되살리고자 했다. 이 움직임을 정명도, 정이천을 이어 주희가 집대성했다. 주희가 주자(朱子)로 불리는 소이다.

고려 말 원나라를 거쳐 들어온 성리학은 이미 공염불이 된 지도이념으로서 불교를 대치하고자 했다. 이들은 이성계와 손잡고 새로운 왕조, 조선을 건설했다. 성리학은 조선 중기에 와서 극성했다. 퇴계의 성리학은 원효의 화쟁론(和爭論)과 함께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이론체계다.

그러나 성리학은 고도한 이론체계를 기호하는 선비들은 충족시켰겠지만, 사상에 있어서는 이론, 실천에 있어 원칙에 빠지는 성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성리학은 “天命之謂 性, 率性之謂 道, 修道之謂 敎”라는 체계에 서있다. 진리의 원천을 불변의 원리에서 구하는 선비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운운’처럼 명분을 중시한다.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은 아들보다 나이가 적은 계모와 아들 같은 동생 영창대군을 폐한 광해군을 몰아낸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면서 남한산성에서 임금이 오랑캐에 三?九叩를 하는 오욕을 당하면서도 누구 하나 자결한 선비는 없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에 대한 추모의 글이 계속 올라오는 가운데 그가 이 시대의 바람직한 지도자와 명사 상(像)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겸손하며 따뜻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인간상을 우리 사회가 그리워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인생의 표상으로서, 나이 든 사람은 그들대로 남은 인생의 지표로 삼을 만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삼을 만하다. 기업인 구본무 회장은 수목장으로 자연으로 돌아갔다.

LG는 70개 계열사를 거느린 연매출 160조원의 글로벌 기업이다. 선대의 럭키는 구씨가와 허씨가가 합해 만들어졌다. 럭키는 기업경영에서 和를 존중하여 다툼 없이 잘 이끌어 왔다. 럭키는 적절히 분리되어 오늘날 LG와 GS, LS로 다같이 대기업그룹으로 성장하였다.

정도 경영과 인화단결을 모토로 하는 LG는 일찌감치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었기 때문에 다른 기업집단처럼 지배구조 변화에 따른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 한다. 앞으로는 바이오 분야와 에너지 분야를 강화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 방향 역시 잘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품성과 기풍, 구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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