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깨끗한 식수 마시지 못하는 절반의 국민과 사태파악 못하는 정부
[아시아엔=나시르 아이자즈 <아시아엔> 파키스탄 지사장] 2017년 12월의 춥고 안개 자욱한 어느 일요일 아침, 빈 플라스틱통을 실은 릭샤(인력거)를 이끌고 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을 재촉하고 있다.
“사람들이 물을 구하러 수로로 향하고 있다.” 곁에 있던 조카가 필자에게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가정 내에서 수동펌프나 전기펌프를 돌려 물을 얻었지만, 최근 음용을 중단했다. 마을의 지하수에 비소가 상당량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필자가 “제대로 정화되지 않은 수로의 물도 위험한 것 아니냐”라고 묻자 조카는 “자선가들이 비교적 안전한 지하수가 매장된 수로에 수동펌프 6대를 설치해줬다”고 답했다.
필자의 고향이기도 한 파키스탄 신드 주 중앙의 비리아 시 이야기다. 오랜 동안 이 곳을 방문하지 못했기에, 고향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이제서야 알게 됐다. 호기심이 생겨 사람들이 물을 길으러 가는 수로까지 따라가기로 작정했다. “인파가 하루 종일 몰려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왔다.” 펌프를 손으로 돌리고 있던 10대 청소년이 말했다. 순서를 기다리던 또다른 사람은 “이러한 현상은 인근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지하수가 오염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필자에겐 매우 고통스러운 광경이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 각 가정에는 작은 우물이 있었고, 마을의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큰 우물도 있었다. 우물의 물은 늘 깨끗하고 맑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우물은 수동펌프와 전기모터펌프로 교체됐다. 물도 염분이 함유된, 악취가 나는 물로 변해버렸다.
비리아의 토목기사인 마지드 수므로는 “2만 이상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정부가 30년 전에 상수도 시설을 구축했으나 제 기능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필자는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자 환경부처에서 은퇴한 공직자 구울람 라술 키리오와 연락을 취했다. 그는 이에 대해 “지난 수십 년간 토양에 뿌려진 화학비료가 주 원인이다. 농촌 지역엔 제대로 된 하수처리 시스템이 없다. 오염된 연못과 호수들이 마을 수질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비가 내리지 않아 지하수의 염도를 낮추지 못한 것도 한 몫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사태를 예방하지 못한 신드 주 정부의 무능함을 파키스탄 대법원에 고발한 변호사 오스토의 사례를 들면서 정부의 태만도 지적했다.
기자로서 필자 역시 파키스탄의 상수도와 위생설비 시스템이 실패했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약 25년 전 한 NGO 단체는 “신드 주 모든 지하수의 비소 함량이 높아지고 있다. 주 정부 차원의 비상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정부가 발행하는 공문서는 이 문제에 대해 낙관하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억 인구의 90% 이상이 음용가능한 식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구의 72% 이상이 하수처리 시스템의 혜택을 보고 있다고 한다. 실상은 이와 전혀 다르다. 파키스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안전한 식수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신드 주지사가 대법원에 소환됐으며, 공청회까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오스트 변호사는 제대로 된 하수처리 시스템을 통해 깨끗한 식수가 공급되는 영상을 제출하며 정부의 무능을 꼬집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파이프를 설치해 깨끗한 식수를 공급할 경우 국민이 납부해야 할 세금도 크게 증가할 것이란 설이 퍼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국민들에게 안전한 식수를 제공하는 것보다 휴대전화 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더욱 중요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