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사랑채’와 ‘임청각’에 부는 바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임청각(臨淸閣)은 안동 고성이씨 대종택으로 석주 이상용(石洲 李相龍, 1858∼19332) 선생의 생가다. 임청각은 석주 선생을 비롯해 아들, 손자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하는 등 독립운동의 산실이다. 그런데 일제는 중앙선 철도 부설을 하며 50여칸의 행랑채와 부속채를 철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청각을 방문해 방명록에 “임청각의 완전한 복원을 다짐합니다”라고 서명하고 올해 8·15 경축사에서도 언급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여 임청각 복원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일제에 의해 훼손된 민족의 혼이 서린 임청각을 하루빨리 복원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고 애국애족 정신 계승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은 독립유공자 후손들만의 자조 섞인 푸념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로 확인됐다. <경향신문>이 실시한 ‘독립유공자 유족실태 설문조사 결과’ 독립유공자 후손 10명 중 8명이 고졸 이하 학력자로 밝혀졌다. 학력 위주의 한국사회에서 낮은 교육수준은 직업선택의 기회를 박탈한다. 후손 10명 중 6명은 현재 직업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직업을 묻는 질문에서는 응답자 225명 중 131명(58.2%)이 ‘무직’이라고 답했다. 학력은 무학이 25명(11.1%), 초등 졸이 43명(19.1%), 중졸·중퇴가 31명(13.8%)으로 독립유공자 후손 절반 가량이 중졸 이하의 학력이다.

경향신문과 민족문제연구소의 공동 조사 과정에서 후손들 중 일부는 “더 이상 정부와 사회에 기대할 것이 없다”며 조사 자체를 거부했고 일부는 강한 반감까지 드러냈다고 한다. 이들의 先代인 독립유공자 대부분은 일제 당시 고등교육을 받은 당대 엘리트들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교육 부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사를 주도한 민족문제연구소 김도훈 상임연구원은 “여전히 친일문제가 사회적 논쟁의 주요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독립유공자와 후손이 겪었던 고초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고 밝혔다. 그는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에 대한 사회적 예우는 국가의 정통성 및 존엄성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생활실태는 잘못된 역사청산의 잔재”라고 했다.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 명예교수는 “해방 후 대한민국은 친일세력이 모든 권력을 독점했다”며 “독립유공자들은 변방으로 밀려나야 했고 심지어는 친일정부의 감시와 탄압을 받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서중석 교수는 “정실주의와 연고주의가 팽배해 있는 대한민국에서 친일파 후손은 선대들의 명예와 부를 물려받았지만 독립유공자 자손들은 선대의 가난과 피해의식을 고스란히 이어받아야만 했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다행하게도 지난 10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 유공자 3대까지 합당한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 일환으로 조국을 위해 몸 바친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이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나라사랑채’에 입주했다. 곤궁한 형편에 처해있는 그분들의 현실은 늘 우리가 안고 있는 마음의 빚이 아닐 수 없었다.

독립유공자와 민주유공자 후손들의 보금자리인 5층짜리 ‘나라사랑채’에는 독립·민주 유공자 14가족이 함께 살게 됐다. 최장 20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이다. 정부는 나라사랑채 2호, 3호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공급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 완전히 새롭게 하겠다. 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하겠다. 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 자녀와 손자녀 전원의 생활안정을 지원해서 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다”고 했다.

다시는 이 땅에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애국자의 후손 3대가 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임청각에 부는 바람이 어렵게 사시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도 훈훈하게 불어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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