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 34] 춘신군의 때늦은 후회 “결단해야 할 때 안 하면 목숨 잃고 멸족”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신릉군 무기는 의를 위해 나라를 버리기까지 한 사람이다. 사마천이 특히 그를 좋아했다. 그는 위나라 소왕의 막내아들이며, 안희왕의 이복 동생이다. 무기는 겸손한 인품을 가지고 있어서, 선비가 잘났거나 못났거나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예를 갖추어 사귀었으며 교만하게 대하지 않았다.
진나라 소양왕이 조나라를 포위하였을 때다. 무기의 누이가 조나라 혜문왕의 아우인 평원군의 부인이었는데, 여러 차례 안희왕과 무기에게 편지를 보내 조나라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안희왕은 처음에는 장군 진비(晉鄙)에게 군사 10만명을 주어 조나라를 구하게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위협하자, 곧 태도를 바꿔 조나라를 구한다고 하고는 실제로는 양다리를 걸친 채 시간만 끌었다.
조나라의 평원군은 신릉군에게 사신을 보내 위나라의 배신을 크게 책망하였다. 무기는 안희왕이 끝내 조나라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는 빈객들을 설득하여 수레 100여대를 준비하였다. 조나라와의 의리를 지켜 조나라와 함께 죽기를 각오했던 것이다.
무기는 한단을 향해 가는 길에 빈객 후영에게 들러 상황을 알렸다. 후영은 그에게 비책을 알려준다. 결국 후영과 백정 주해의 목숨을 건 도움으로 위나라 군사 8만을 훔쳐 진나라 군대를 공격하였다. 진나라 군대는 간신히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조나라 효성왕과 평원군이 직접 국경에서 무기를 맞아, 크게 감사하였다. 조나라 효성왕이 신릉군 무기에게 감사의 표시로 성 5개를 무기에게 주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무기는 갑자기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자만심으로 가득찼다. 이에 빈객 중 한 사람이 무기에게 충언한다.
“세상에는 잊어야 하는 일과 잊지 말아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남이 신릉군께 베푼 은덕은 잊지 말아야 하지만 신릉군께서 남에게 베푼 은덕은 곧 잊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는 법이어서, 위나라의 군사로 조나라를 도운 것은 조나라에서는 공이 되지만, 위나라에서는 죄가 됩니다. 이런 때에는 특히 교만하시면 안 됩니다.”
무기는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그는 조나라 성을 끝내 받지 않았다. 그 성을 받는 순간 신릉군은 위나라의 적이 되는 순간이었다.
무기는 조나라에서 10년을 머물렀다. 그러던 중 진나라가 위를 공격하자 위왕은 그를 불렀다. 무기는 가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돌아가서 위의 대장군이 되어 진의 공격을 막는다. 무기가 돌아온 것을 알게 된 제후들은 각기 군사를 보내 위나라를 구하게 하였다. 무기는 다섯 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황하 이남 지역에서 진나라 군대를 물리쳐 함곡관에 이르렀다. 연합군의 힘에 눌려 진나라 군대는 감히 함곡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진나라 재상 범저가 즉시 방책을 내놓아 위왕을 흔들어댄다. 그는 “천하의 제후들은 위나라 공자 무기는 알지만 위나라 왕은 알지 못합니다. 신릉군 무기가 이를 이용해서 위나라 왕위를 넘보고 있습니다”라고 진언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위나라에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 무기가 왕으로 즉위하지 않았느냐며 축하 인사를 하였다. 무능하며 어리석은 위왕은 두려움에 신릉군을 경계하여 내치게 된다.
이후 무기는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고, 마침내 정말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 해에 안희왕도 죽었다. 곧 위나라는 진에 멸망당한다.
전국시대의 또다른 사군자인 초나라 출신의 춘신군 황헐은 변설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그는 초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마다 자신의 변설로 여러 차례 위기를 벗어난 적이 있었다. 진나라는 초나라를 가볍게 보고 대군을 일으켜 초나라를 일거에 멸하려고 했다. 이에 황헐은 진나라로부터 초나라를 구하기 위해 표장을 써서 진소왕에게 올려 진을 물러나게 하였다.
또한 황헐이 진소왕의 약속을 받고 초나라에 귀국하자 초나라는 다시 황헐을 사자로 삼아 태자 완을 인질로 진나라에 보냈다. 진나라는 두 사람을 몇 년간 붙들어 두고 귀국시키지 않았다. 황헐은 진왕에게 진언했다.
“태자를 귀국시키는 편이 진나라에 이로울 것입니다. 태자가 귀국하여 초왕의 자리에 오른다면 그는 필시 진나라를 중히 받들고, 또한 상국의 무한한 은혜에 감격할 것입니다. 이것은 곧 진과 초 두 나라 사이의 동맹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또한 만승지국에 베푸는 덕이 됩니다.”
초왕이 후사가 없자, 이원이 춘신군에게 자신의 누이동생을 바쳐 아이를 임신케 하고 후에 초왕에게 그녀를 보내자고 설득한다. 춘신군이 동의하고 초왕이 그녀를 만난 끝에 사내아이를 얻게 되자, 그 아이를 태자로 봉하고, 이원의 누이는 왕비가 되었다. 초왕이 누이 때문에 이원을 중용하자 이원은 이때부터 초나라의 비선실세가 된다.
이원은 혹시 춘신군이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누설하거나 혹은 시기하게 될 것을 걱정하여 아무도 몰래 자객들을 고용하여 춘신군을 죽여 그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초나라 사람들 중에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자가 여럿 있었다. 이는 마치 진나라에서 여불위와 장양왕의 관계와도 같았다.
부하 신하 주영이 춘신군에게 건의하기를 이원을 먼저 처서 죽이지 않으면, 춘신군이 당한다 하며 자신의 말대로 할 것을 강력히 건의했으나, 춘신군은 이를 군자답지 못한 일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결국 춘신군은 이원에게 당해 죽게 된다.
“當斷不斷 喪命滅族”(당단부단 상명멸족)! 이 말은 “결단해야 할 때 하지 않아 목숨을 잃고 멸족당하다”라는 뜻으로 태사공 사마천이 애통해하며 한 말이다.
춘신군이 진소왕을 설득하고, 다시 목숨을 걸고 태자를 탈출시켜 귀국시킨 일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후에 이원 같은 필부에게 제압당한 것은 그가 늙어 지혜가 무디어졌기 때문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마땅히 결단해야 할 때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도리어 화가 미칠 것이다”라고 했는데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