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손석희의 사과, 한국당 홍준표의 사과

중앙일보-JTBC-한국정치학회 공동주최 2017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가 25일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 방송지원센터에서 열렸다. 사회자 손석희(왼쪽)와 발언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사진=뉴시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사과(謝過)는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뜻한다. 하지만 사과를 하는 사람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 때 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19일 KBS 주최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가 이른바 ‘여성설거지’ 발언으로 타 후보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유일한 여성인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물론 홍준표 후보와 같은 보수 후보로 분류되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까지 설거지 발언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웃음으로 상황을 얼버무리려던 홍준표 후보는 정색한 심상정 후보의 강력한 사과 요구에 마지못한 듯 “말이 잘못됐다면 사과하겠다”고 했다.

지난 17일 홍준표 후보는 YTN에 출연해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일로 하늘이 정한 것”이라고 말해 거센 ‘여성비하’ 비판을 자초했다. 이튿날 청니(靑泥) 김병래 선생이 내게 ‘사과의 진정성’에 대해 물어왔다.

“(전략) 한 후보가 여성비하 발언을 했다 하여 ‘스토롱맨’이 아닌 ‘나이론맨’이라며 사과하라는 말을 듣고, ‘사과한다’는 말을 하면서 게면쩍게 웃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에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사과가 갖는 의미. 사과의 진정성에 대해서 귀감이 되는 좋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청니 합장”

동감이다. 필자 역시 토론장면을 보고 차라리 사과하지 않음만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는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진정성이 보이질 않아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한다. 오래 전인 1998년 8월 17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에 대해 백악관 맵룸에서 4분짜리 사과연설을 했다.

당시 클린턴의 연설은 어설픈 해명이었다. 그런데도 새로운 위기를 불러오지 않고 스캔들을 마무리 국면으로 전환시켰다. 연설 직후 미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직 사임이나 탄핵에 찬성한 비율은 4분의 1에 불과했다.

국민의 대다수는 클린턴이 대통령직을 사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로써 르윈스키 스캔들은 마무리됐다. 대통령 사생활을 더 이상 문제 삼지 말자고 국민들이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 연설은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못했다.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은 연설 이전과 마찬가지로 60% 정도를 유지했다.

물론 연설이 클린턴의 결백을 확신시켜 주지는 못했다. 클린턴 사과연설을 계기로 스캔들이 종식돼야 한다는 다수 미국인 가운데는 클린턴을 지속적으로 좋아한 사람뿐 아니라 클린턴을 나쁘게 보더라도 아이들 앞에서 공공연히 다룰 주제가 아니거나 너무 오래 다룬 지겨운 이슈라고 생각한 사람도 포함됐다.

홍준표 후보는 자신의 자서전에 쓴 ‘돼지 발정제’ 관련 학창시절의 매우 부적절한 처사로 또 뭇매를 맞고 있다. 그마저도 한다는 사과가 “책을 재미있게 쓰려고 그랬다”고 또 얼버무렸다. 역시 사과의 진정성이 안 보였다.

정치인의 사과가 문제 되는 부분은 사과가 진솔한가 하는 점이다. 잡아떼는 모습보다는 차라리 과잉 사과가 더 동정을 받는다. 잘못을 반성해서 진정으로 사과하는 모습이어야지, 마지못해 하는 사과는 효과를 보지 못한다. 잘못하지 않았는데 사과하라고 하니 사과한다는 메시지는 차라리 사과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더욱이 진정성을 의심받을 말과 행동은 조심해야 한다.

잘못의 경중(輕重)보다 사과의 진정성에 따라 대중은 반응한다. 특히 대중이 잘못의 경중을 판단하지 못할 때에는 큰 잘못보다 작은 잘못이 결과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큰 잘못을 저지른 측은 진지하게 사과하는 반면 작은 잘못을 저지른 측은 진지한 사과를 생략하여, 대중은 사과한 큰 잘못보다 사과하지 않은 작은 잘못을 응징하기 쉽다.

사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인정은 경제인이나 문화인보다 정치인이 더 어렵다고 한다. 정치인의 사과 내용은 자기 주변이나 집단의 잘못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늘 논란거리다. 정치인은 곧 밝혀질 거짓말은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발각될 가능성이 불확실한 때에는 아예 모른다고 한다. 지금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수많은 고관대작들이 한결 같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다 이를 증명한다.

지난 19일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가 방송 중에 자신들의 잘못된 보도에 대해 사과했다. “여론조사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숫자가 잘못 들어갔습니다. 어제 방송이 나간 뒤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민감한 대선 국면에서 큰 실수였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과 양 후보 측 관계자에 사과드립니다.”

아무리 작은 실수라도 잘못을 했으면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것이 당연하다. 손석희 앵커의 사과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동안 우리 언론이 보여준 사과의 형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JTBC가 보여준 사과는 언론뿐 아니라 정치인들이 닮아 가야 할 사과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거짓은 무너질 때 여지없이 무너진다.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설사 잘못을 저질렀어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의 마음은 마침내 덕(德) 있는 후보를 따르게 된다. 하늘의 뜻 역시 사(私)없는 이에게 돌아간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