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재단 박세일 이사장의 생애와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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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편집국] 한반도선진화재단(이하 한선재단) 박세일 명예이사장이 13일 오후 6시57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박 명예이사장은 2006년 한선재단을 설립했다. 한반도 선진화와 통일을 이루는 게 목표였다. 한선재단은 지난 10년간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문가들이 종합적인 국가 전략을 연구·개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명예이사장은 서울대 교수로 1995년 문민정부 시대의 ‘세계화개혁’을 주도했다. 그는 2000년부터는 국민통합과 국가발전 이념으로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소중히 하는 ‘공동체자유주의’를 강조했다. 2006년부터는 ‘대한민국 선진화’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의 국가비전으로 제시했으며 2010년 이후에는 동북아에 ‘세계중심국가’로 우뚝 서는 ‘선진통일’을 21세기 한반도 비전으로 설정했다.

박 명예이사장은 1948년 4월 4일 서울역 뒤 만리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을 거쳐 1985년부터 서울대 법대 교수로 ‘법경제학’을 가르쳤으며, 1989년 개혁적 시민운동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탄생을 주도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사회복지수석을 역임하며 ‘세계화’를 김영삼 정부 핵심국가전략으로 제시했다. 사법·교육·노동·복지·문화 분야의 국정개혁에 앞장서왔던 박 이사장은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했다. 제17대 국회의원으로 여의도연구소장과 정책위의장을 역임했으며 2005년 행복도시건설특별법(일명 세종시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포퓰리즘의 전형’이라 비판하며 의원직을 던졌다.

이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공동체자유주의 가치를 제시하고 한반도 선진화와 통일을 연구하는 개혁적 보수 싱크탱크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설립하고 2014년 8월까지 이사장으로 복무했다.

다음은 그의 저서다. <법경제학>(2000년) <대한민국 선진화전략>(2006년) <선진화혁명 지금이 마지막 기회> <21세기 대한민국 선진화 4대전략>(이상 2007년) <대한민국 국가전략>(2009년) <창조적 세계화론>(2010년)

<위대한 선진, 행복한 통일> <이 나라에 國魂은 있는가>(이상 2011년) <선진통일전략>(2013년)

다음은 그가 남긴 어록.

“보수는 철학이 없고, 진보는 정책이 없다.”(2015.12.07 아주경제 인터뷰)

“우리의 대북정책은 그동안 북한의 지도부, 정권 차원에서 이뤄졌다. 북한 주민과의 신뢰를 쌓는 쪽에 치중해야 한다. 북한 정상국가화의 주체는 북한 주민이다.”(2013.04.12 매일신문 인터뷰)

“지금 우리는 모두가 21세기 대한민국의 꿈을 위해 뛰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아무도 ‘대한민국의 꿈’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국가개조와 선진통일의 의지와 전략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대권구도의 조기가열화와 한없는 당리당략과 무한정쟁, 그리고 이를 위한 홍보전략, 이미지 관리와 여론 관리에만 올인하고 있습니다. 북핵문제도 경제문제도 모두 사라지고 국익도 공동선도 사라지고 오직 소수에게 독점화된 정치, 사유화된 정치의 선거공학만이 난무하고 있습니다.”(2016.11.02 대한민국 국민포럼 발기인 대회)

“21세기의 문턱에 들어선 대한민국은 선진국 진입이라는 분명한 좌표를 상실한 채 ‘중진국의 덫’에 걸려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난 성공의 역사에 대한 자학과 계층 간 반목과 대립의 조장을 끝내고 21세기 미래로 나아갈 새로운 국가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2016.09.28 한반도선진화재단 창립총회)

“이렇게 잘못된 ‘위헌적 수도분할’ 정책을, 그리고 21세기 세계화 선진화라는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반쪽 수도이전’정책을, 통일 시대의 도래를 무시하는 듯한 반통일적 수도남진(首都南進) 정책을 현 정부가 졸속으로 국민적 합의와 동의 없이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단히 불행하게도 우리 한나라당이 이러한 잘못된 정부 정책에 합의해 주었습니다. 여당에게는 표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국가에게는 재앙을 가져오는 이러한 정치적 정략적 정책에 우리가 동의해 주었습니다. (중략) 저는 우리 한나라당이 ‘반쪽 수도이전’을 반대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국회의원직을 사퇴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들께 엎드려 사죄하고자 합니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2005.03.02 세종시 관련 한나라당 의원총회 연설문)

“통일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통일은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감이 아니다.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통일은 우리의 정성스런 땀과 눈물 그리고 뜨거운 피로써 만드는 것이다. 통일은 선물이 아니라, 우리가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저서 <선진통일전략>에서)

“나는 무슨 꿈을 꾸면서 지난 60여년을 살아왔는가? 돌이켜 생각하면 사실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잘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느껴지는 건, 끊임없이 대한민국의 꿈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꿈을 실현하는 데 작으나마 의미 있는 기여를 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다. 대단히 건방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이다. 내 개인의 꿈은 별로 뚜렷했던 것 같지 않다. 비록 가난했지만 부자가 되는 것도, 지극히 평범한 집안이었지만 권력을 얻는 것도, 그렇다고 위대한 학자가 되는 것도, 그 어느 것도 그 자체는 크게 매력적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 같다.”(저서 <이 나라에 국혼은 있는가>에서)

“우리사회는 공동체의식이 약해져 통일 이후 엄청난 혼란이 걱정된다. (중략) 통일은 어려운 북한 동포들을 껴안고 밑바닥부터 시작하겠다는 나눔과 배려의 정신이 있어야지,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으론 이루기 어렵다.”(2013.11.23 선진통일운동연합 발기인 대회)

“개혁의 목표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참여정부’라는 목표는 바른 방향이지만, 개혁의 수단인 정책은 국민 대중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합의에 기초해야 잘못된 정책을 막을 수 있다. 개혁원군의 확보를 위해 진보와 보수를 아우를 수 있는 중도개혁을 해야 한다.”(2003.02.25 동아일보 ‘노무현 정권에 당부하는 글’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우파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철학적 우파’는 한국에 없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이어야 하는데, 현실에 안주하여 기득권만 지키려 하고 그 결과 부패하는 보수주의자들만 많다”(2008.06.04 한겨레 인터뷰)

“국민들이 시대를 정확히 읽고, 국가의 흥망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세상의 변화에 올바로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모아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막연한 불안에서 이웃나라에 대한 배타적 태도로 나아가거나, 현실에 안주해 변화를 거부함으로써-필요한 개혁과 변화를 못하여-역사발전을 그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그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이 자기책임과 자기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저서 <창조적 세계화론>에서)

“지도자가 스스로 모범을 보여서 국민들이 보고 서서히 배우면서 그 사회공동체의 문화가 습관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대통령, 국무총리, 각부장관, 국회의원 등이 지도자이지만 이분들만이 아니라 어느 사회에든 크고 작은 조직이 있고 그 조직의 장들은 모두가 지도자입니다. 조그만 조직에는 조그만 조직의 장이 있고 그 장들이 어떠한 삶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 그 구성원들에 삶을 바꾸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 가장 좋은 것은 구성원 스스로 자기도 모르게 건강한 문화 가치 공동체성을 익혀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제일 좋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2016.01.11 Daily POP 인터뷰)

“통일은 축복이고 대한민국의 블루오션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우리를 무척 부러워한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오히려 대한민국 안에서는 통일에 대한 관심이 낮고 통일을 부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우리에게 하는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너희 나라 통일의 기회는 가까이 오는데 아마 통일 못 할 것 같다. 너희 나라 정치의 혼란과 국민의 무관심을 봐라. 국민은 통일에 관심이 별로 없고, 통일하겠다고 나서는 정치 리더십도 없지 않은가?’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한 이야기이다.”(저서 <선진통일전략>에서)

“학비와 생활비는 학교 장학금으로 충당했지만, 한국의 가족들 생활비를 보태려면 방학 때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우리 모두가 어려운 시대를 열심히 살아냈던 거지요. 하지만 저에게는 아무리 어려워도 항상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이 있어요. (중략) 몹시 가난할 때도 부자를 보면 ‘왜 저 사람은 부자인데 나는 가난한가?’하는 비관적 생각이나 어떤 분노·적개심보다는, ‘이건 다만 시간문제일 뿐이다’라고 늘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나라 전체의 경제를 발전시킬 것인가를 궁리하며 열심히 공부했지요. 나라가 잘되면 나도 잘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저서 <이 나라에 국혼은 있는가>에서)

“공동체적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공동체주의의 결합으로 이해해야 하고, 그렇게 하면 양자 간에는 아무런 모순도 대립도 없고 오히려 상호보완적 ? 상호보강적 관계가 된다. 그래서 공동체자유주의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즉 개개인의 자유보호와 확대를 기본목표로 하되, 설득과 교육을 통하여 공동선에 대한 이해도 함께 높여 개체와 공동체의 동시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 즉 공동체 자유주의적 주장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21세기 초 대한민국의 국민통합과 선진화를 향한 국가발전의 기본철학과 이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저서 <공동체자유주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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