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뉴욕 ‘캐롤’보다 당돌한 일제강점기 ‘아가씨’
캐롤?“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vs 아가씨 “당연한 건데 뭐가? 왜?”
2016년 상반기, 한국에선 두 편의 동성애 영화가 화제를 모았다. <캐롤>(2015, 감독 토드 헤인즈)과 <아가씨>(2016, 감독 박찬욱). 이 두 편의 작품은 동성애를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조차 찾기 어려웠던 1900년대를 시대배경으로, 여성간 동성애를 아름다운 영상 안에 담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두 작품은 2015년과 2016년 나란히 칸 영화제에 출품됐으며, 대중과 외신들은 한 해를 두고 출품된 <캐롤>과 <아가씨>를 비교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 편의 작품은 가장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니 ‘동성애’ 자체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다.
먼저 <캐롤>을 살펴보자. <캐롤>의 감독인 토드 헤인즈는 지난 2월 별세한 데이빗 보위를 모티브로 했으며, 락키드들의 동성애를 그린 <벨벳골드마인>(1998)을 연출했고, 본인 스스로도 커밍아웃을 한 LGBT 대표인물 중 하나다.
연출자의 개인적인 배경을 차치하더라도 <캐롤>은 분명 동성애를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다뤘다. 토드 헤인즈 스스로가 “남성으로서 여성들의 동성애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된다”고 할 정도로 어려움을 토로했으며, 연출자의 섬세한 감정은 <캐롤>에 고스란히 녹아났다.
영화 중반 테레즈(루니 마라 분)는 남자친구에게 자신이 동성인 캐롤(케이트 블란쳇 분)을 사랑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리는데 이 부분은 토드 헤인즈의 섬세함을 잘 드러내는 장면 중 하나다. 이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는 테레즈는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지만 내가 이성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고 나지막이 고백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성애라는 단어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캐롤>, 그리고 그 당시 미국 역시 굉장히 보수적인 사회였고, 동성애 역시 터부시 됐다. 이는 영화에도 고스란히 드러났으며, <캐롤>의 배경이 된 사회는 동성애를 표현할 ‘적절한 단어’ 조차 없었음을 암시한다.
물론 2015년 여름, 전세계 하늘에 무지개가 뜬 이후 이 영화를 접한 이들에겐 ‘동성애’ 자체는 생소하지 않을지 모르나, 그 당시에는 단어조차 정립되지 않았을 정도로 동성애가 금기시됐고, 조심스러웠다. 동성애에 대한 토드 헤인즈의 접근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이는 <캐롤>과 <아가씨>의 결정적인 차이다.
<아가씨>로 넘어오자. 이 작품은 <캐롤>보다 뭔가 강렬하다. 낭독회를 가장한 기괴한 성행위 묘사와 고문의 도구로 사용됐던 요상한 기구들과 거대 문어. 논란이 됐던 히데코(김민희 분)와 숙희(김태리 분)의 강렬한 정사씬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이 작품은 두 여주인공의 사랑에 대해 ‘한 치의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둘은 사랑에 빠진 이후 서로를 탐닉하고 의지하지만 <아가씨>는 이 둘의 사랑을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묘사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왜, 어떻게 동성과 사랑에 빠질 수 있지?”라는 질문을 생략한 채 말이다.
이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이렇게 밝힌다.
<아가씨>는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맞서 싸우는 퀴어영화는 아니다. “우리 사랑을 인정해주세요”가 아니라 “당연한 건데 뭐가? 왜?” 하는 식으로, 굳이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노멀한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2016. 6. 6 씨네21 인터뷰 중)
이 지점에서 <캐롤>과 <아가씨>의 근본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전술했듯, <캐롤>은 1950년대 미국 뉴욕을 살아가는 동성애를 표현하는데 있어 매우 섬세하게 다가간다. 영화 속에서 ‘동성애’라는 단어의 언급을 회피할 정도로.
그러나 보다 보수적인 일제강점기 조선을 시대배경으로 다룬 <아가씨>는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에 오히려 당돌하게 맞선다. “그게 뭐 어때서?” 성 소수자인 토드 헤인즈 감독 조차 조심스러워 하고 쉽사리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박찬욱 감독은 당당하고 거리낌 없이 표현한 것이다.
<아가씨>가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동성애를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묘사한 것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연 한국 사회도 “왜 그렇게 됐지?”라고 묻기보단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는가? 종교적 신념 또는 개인의 호모포비아는 차치하고 말이다. 그 당돌한 화두를 <아가씨>가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