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천사 회주 정념스님 “낙산사 화재는 감당할 업보, 성공적인 복원은 오로지 국민들 공”
[아시아엔=최정아 기자·사진 라훌 아이자즈 기자] “폐허의 낙산사에 꽃이 피고 풀이 자라나는 모습은 눈물이 어리는 감동으로 와 닿습니다.”
꼭 11년 전 식목일 낮, 1300년 역사를 지켜온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에 큰 화재가 났다. 낙산사가 잿더미가 되는 모습이 생중계됐고 국민들은 슬픔에 젖었다.
지금의 아름다운 낙산사 모습이 나타나기까지 9년간 복원에 혼신의 힘을 쏟은 이가 있다. 바로 당시 낙산사 주지로 있던 정념스님(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종책특별보좌관 단장, 흥천사 회주스님)이다. 그는 복원을 마치자마자 회향했다. 정념스님이 남긴 말은 이 한마디였다.
“내가 감당해야할 업보였다. 국민들에게 모든 공을 돌린다.”
낙산사 복원 뒤 그는 서울로 올라와 폐허와 다름없던 성북동 흥천사를 다시 되살렸다. 흥천사를 찾는 시민들은 도심 속 사찰을 거닐며 평온을 찾고 있다.
낙산사 주지를 맡은 지 보름만의 일이었다. 2005년 4월5일, 강원도 양양에 큰 산불이 난 것이다. 산불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정념 스님은 0.1%의 확률도 가벼이 보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다시 낙산사로 넘어가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불상을 밖으로 모셨다. 그리고 불과 3시간 뒤, 낙산사가 불타기 시작했고 잿더미로 타들어갔다. 정념스님은 그날을 떠올리며 “그 모든 것이 나의 탓이었다”고 했다.
“낙산사 화재의 1차 원인은 낙산사를 지켰던 저와 스님들에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랜 기간 수행자답지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죠. 불가에선 이를 ‘업’이라고 합니다. 큰 차원에선 제 책임이에요. 그래서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말라고 했어요. 낙산사 스님들한테 언론 인터뷰도 하지 말라고 했죠. 건물은 불이 나면 아무 것도 없지만, 사람의 마음에 불이 붙으면 끌 수가 없어요. 중요한 건 사람들 마음입니다. 마을 주민들에게 5만원짜리 상품권을 나눠드리며 ‘라면이라도 잡수면서 힘을 내자’고 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주민들께서 많이 고마워했다고 하더라고요. 낙산사도 힘든데 도와줬다고 말이죠.”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일어난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치명적인 산불에 낙산사뿐만 아니라 일반 주택도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양양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해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갔다. 사람들 마음의 불씨를 잠재우기 위한 정념 스님의 대처방식은 이러했다.
“주민들이 비대위를 구성하고 현수막을 내걸고는 나를 찾아왔어요.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재(人災)라며 담배꽁초를 버린 사람을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성명서에 싸인을 해달라는 거예요. 설득을 시작했죠. ‘우리 지혜로운 길을 가자. 처벌보단 대책이 중요하다’고 말이죠. ‘국무총리 물러가라’는 현수막도 모두 철거하자고 했어요. 이후 여름장마가 오기 전에 주민들 집을 지어 줘야한다며 정부에 재정 지원을 해달라고 설득했죠. 주민들이 저를 신뢰하고 비대위를 해체시켰어요. 모든 일이 잘 되려면 서로 원망하는 마음을 버려야 해요. 좋은 마음으로 집을 지어야 재난을 비켜갈 수 있어요.”
1340년 역사를 지닌 낙산사는 2005년 화재를 포함해 8번 화재를 겪었다. 그 중 7번째 화재는 6·25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인재였다. 정념 스님은 6·25전쟁을 떠올리며 “재난을 피해가기 위한 열쇠는 바로 이웃”이라고 강조한다. 이웃이 선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봐야 큰 화(禍)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많은 분들이 놓치고 사는 것이 있어요. 십자가나 불상은 사실 나무나 돌덩이에요. 거기에다 대고 살려달라고 빌면서, 정작 자신들을 진짜로 구원해줄 주변사람에겐 소홀한 거죠. 실제로 자신을 살려줄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데, 잘 몰라요. 주변사람한테는 마구 대하면서 정작 십자가와 불상 앞에선 잘해요. 행복과 불행이 정해지는 건 ‘생각의 차이’입니다.”
화재 이후 그가 가장 정성을 다했던 이들도 바로 양양 주민이었다. 그들 마음을 얻어야 복원도 불사도 잘 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명절마다 커피세트와 같은 작은 선물을 보냈다. 양양군 당국을 설득해서 복지관을 짓고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제공했다. 정념 스님에게 낙산사를 지키는 이들은 스님이 아니라 바로 ‘양양군 이웃 사촌들’이었다.
그는 우리와 이웃인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나갔다.
“이웃들이 선한 마음으로 우리 절을 보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건물마다 비싼 돈 내고 보안서비스 하나씩 달잖아요. 저도 한달에 10만원씩 보안업체에 지불하거든요. 북한에 대해서도 ‘평화비’를 주어야 합니다. 북한에도 군사목적이 아니라 인도주의적으로 식량이나 의료품을 보내야 한다고 봅니다. 일종의 ‘평화비’ 같은 것이죠. 그래야 남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홍련암만큼은 꼭 구해달라”…기도 이뤄져
9년. 낙산사 복원에 걸린 시간이다. 정념 스님은 강원도 양양에서 자란 소나무를 직접 구입해 원통보전 복원에 사용했다.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했다. 낙산사에 소나무를 보관할 창고를 만들고, 용도에 맞게 나무를 다듬을 수 있도록 기계실로 옮겼다. 더 쉽고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경제적으로 따지면 손실이 많았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시간과 비용 상관없이 정성스런 마음을 다해야 더 이상 이러한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마음으로 원통보전을 지었죠. ‘바람의 길을 복원해야 한다.’ 복원 당시 제가 항상 강조했던 말이에요. 자연의 길을 막으면 안돼요. 화재 당시 유심히 지켜봤어요. 바람이 빠져나가기만 하면 불도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지나가야 할 길을 막으니 압(압력)이 커진 거죠.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울려야 해요. 바람의 길, 건물의 길, 모두 잘 어울러져야 하죠. 그런 마음으로 낙산사를 복원했죠.”
2013년 정념스님은 낙산사 복원을 마치고 주지스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해 늦가을 복원불사 회향 전날 밤,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3만여명이 밀집한 대형행사였다. 그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모이면 비가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회향 직전 비가 그쳤다. 그는 “모든 공을 국민에게 돌리고 싶다”고 했다.
“9년 동안 항상 마음 속에 자리잡았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어요. 부족하지만 좋을 때 물러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공을 다 국민들에게 돌리고 싶어요. 제가 낙산사를 내려놓고 회향하는 날, 무지개가 계속 떠있었어요. 모든 것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화재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은 법당이 있다. 바로 홍련암 법당이다. 정념 스님은 다른 건물들이 불에 타는 동안 홍련암만큼은 구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홍련암은 무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던 이유는 모두 정념 스님의 정성과 간절한 마음 때문 아니었을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