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완의 사색진보] 노무현과 유시민 어떻게 다른가(2)
노무현이 추진한 한미 FTA를 유시민이 반대하다
노무현은 지지자들의 반대가 예상됨에도 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정책도 선택했다. 그 결과 그가 선택한 정책에는 좌파 우파가 섞여 나왔다. 그래서 이를 두고 참여정부 홍보수석 이백만은 “노무현은 좌파 우파가 아닌 양파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이같이 앞으로 나가는 것을 중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진보를 ‘어드밴스 진보’라 이름붙였다.
노무현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유시민은 지난해 연말 한미FTA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유시민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또는 개인적 선호에 따라 판단이 변해왔다. 이런 잦은 변신에 대해서는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이 가혹하게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5월 발표한 이대근 칼럼 ‘유시민 떠나든가 돌아오든가’는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총선전략으로 지난 2월8일 한미FTA 재협상을 요구하는 서한을 미 정부에 보냈으며 폐기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이런 국면에서 난처해진 노무현 진영은 곧 새로운 논리를 내세웠다. 노무현재단은 “이명박의 FTA는 노무현의 FTA의 ‘짝퉁’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이런 말들이 터져나왔다. “이명박의 FTA는 노무현이 추진한 FTA와 다르다.” “참여정부 시절 추진됐던 한미 FTA는 이익 균형을 맞춘 FTA였지만, 이명박의 한미 FTA는 미국에 나라를 팔아넘기는 짓이다.” 농림부장관을 지낸 김성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사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극성했던 시기의 FTA 논리와 상황이 급변하여 신자유주의의 병폐가 세계도처에 크게 드러난 시점의 논리가 다를 수밖에 없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이런 논리로 갈등을 정리하고 한미FTA 거부투쟁 집회가 열리는 시청앞 광장으로 나간다. 유시민은 이 집회를 이끄는 지도자였다. 노무현이 이런 상황을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그를 대신해서 발언하는 사람들이 있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인 박권일은 “이명박과 노무현의 FTA가 다르다는 건 어처구니없다”고 말한다.(<시사in> 2011.11.17) 안희정 충남지사, 송영길 인천시장도 FTA 찬성입장을 밝혔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 지냈으며 2002년 대선국면에서 자문교수단을 이끌었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도 목소리를 냈다. 김 교수는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는 책 출간을 계기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노무현의 생각을 이렇게 대변했다.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ISD) 등 위험 요소가 산재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잘 가려서 대응하면 문제 많은 신자유주의 질서도 우리 미래에 꽤 좋은 판이 될 수 있다. FTA는 세계의 흐름을 감안한 어쩔 수 없는 도전이다.”(‘FTA 죽이자는 건 노무현 전대통령 뜻이 아니다’ <조선일보> 2012.2.9)
친노진영이 상반된 두 가지 입장으로 갈라지고 있고 노무현과 유시민은 양쪽 입장의 축을 이루고 있다.
국민참여당 내분사태 중 노무현과 유시민의 차이 드러나
유시민의 진보와 노무현의 진보, 즉 리버럴과 어드밴스는 평상시에는 피아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 덩어리로 묶여 있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민감한 사안에 봉착하면 두 사람은 날카롭게 갈라진다. 노무현은 세상을 뜨고 없지만 두 사람 사이의 충돌은 계속된다. 국민참여당의 내분사태도 그런 사례이다.
국민참여당은 노무현정신 계승을 모토로 세워놓고 창당했다. 그러나 창당 2년차인 지난해 3월 유시민이 당대표가 되면서 민노당, 진보신당 등 좌파와 통합을 추진했다. 이때 노무현의 진보정신은 좌파가 아니라면서 유시민 당대표에게 반대하는 그룹이 나타났다. 이들은 당내 주류인 유시민 팬카페인 시민광장 회원 출신 당원들과 맞섰다. 노무현정신과 유시민정신이 충돌하는 구도가 짜였다.
필자는 이 구도 속에서 직접 몸을 담그고 한동안 어느 한쪽의 선수로 뛰었다. 이 과정에서 ‘노빠’와 ‘유빠’ 당원들 간에 세계관의 차이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유빠 당원들이 실용적인 노선을 취했다면 노빠 당원들은 현실적 필요에 따라 지향이 다른 정당과 통합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원칙을 중시하는 노무현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통합반대파와 찬성파가 대립하는 와중에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천호선이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필자에게 확인해주었다. 노무현은 그가 남긴 글이나 말에서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자칭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은 늘 진보주의를 말했다. 그는 서거 직전 수개월 동안 학자출신 참모들을 봉하로 불러들인 자리에서도 ‘진보주의 연구’에 매달렸다. 스스로를 리버럴이라고 밝히고 자유주의의 가치를 역설해온 유시민과 분명하게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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