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웃음치료에서 통곡의 미학으로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필자가 젊은 시절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살 때에 술이 몹시 취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설음이 북 바쳐 통곡할 때가 자주 있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 한이 쌓여서 그랬는지 모른다. 펑펑 울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리고 후련해 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내 막연하였던 그 ‘통곡의 미학’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의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의 기분은 우리 몸에 직접적으로 생물학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보통 웃음이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울음 또한 웃음 못지않게 건강의 지표가 된다면 의외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얼마 전 암을 세번 극복한 어느 교수가 방송에 나와 인터뷰한 이야기는 상당히 인상 깊었다. 그는 “내가 암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맞춤운동의 효과도 컸지만, 울고 싶을 때 크게 소리 내어 울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그 슬픔으로 영국인들이 아주 많이 울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그 해 우울증 환자가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를 두고 심리학자들은 울음으로 스트레스를 날려 보냈기 때문으로 풀이하며 ‘다이애나 효과’라고 이름지었다. 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AERA)>는 30~40대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눈물의 효능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눈물이 직장과 일, 부부관계뿐 아니라 건강을 지키는 데도 매우 큰 도움을 준다. 그런데 일본에는 눈물에 관한 재미있는 사례가 또 있다. 도쿄의 신생 광고회사 ‘비루콤’은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면접 때 다른 사람 앞에서 울 수 있는지를 묻는다. 다른 사람 앞에서 울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떤 자존심도 버리고 성실하게 일할 수 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눈물은 또 잠자리를 기피하는 ‘섹스리스’ 부부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부부끼리 진지하게 울고 난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스킨십으로 연결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설문조사에서도 여성의 82%, 남성의 58%가 ‘사랑’ 때문에 울어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우리 ‘덕화만발’ 가족들에게 웃으라고 권했다. 그래서 모든 댓글과 답글에 “우하하하하하하하하!” 하고 크게 웃는다. 왜냐하면 “행복한 사람이 웃는 것이 아니고 웃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을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웃어라, 웃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내가 갑자기 “울어라, 통곡을 해야 한다!”고 부르짖으니 이상하게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우는 일이 웃는 일과 동일선상에 있는 공존의 감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는 것은 웃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있다. 중증 류머티즘 환자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 뒤 면역 기능의 변화를 관찰한 결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 수치와 류머티즘을 악화시키는 ‘인타로이킨-6’의 수치가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암을 공격하는 ‘내추럴 킬러’(NK) 세포가 활성화되었다는 실험결과가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울음과 웃음이 정반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웃음요법 못지않게 울음요법 역시 그 치료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이같이 울음요법은 잠시 무의식 상태에 빠지는 최면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자신의 기억 속에 저장된 정신적 충격을 스스로 기억해 내고, 이를 눈물로 배설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 슬픔에 잠겨 있던 사람이 울음요법 치료를 다 마치고 나서 웃음을 되찾은 사례는 의학적으로 매우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운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건강한 일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우는 과정을 통해 과거의 심적 고통이 깨끗이 치유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과거 감정을 묻어두고는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과거 불행했거나 나쁜 기억들은 몸속에 도사리고 있다가 정신적인 안정을 방해하고 어떤 식으로든 현실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어느 사회에서나 남자의 눈물은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다. 우는 것은 남자답지 않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볼 때 남자도 눈물을 감추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가 솔직해졌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한다.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그러니까 잘 울어야 웃기도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눈물은 여러 가지 배설작용 가운데 오랫동안 그 이유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행위였다. 그런데 최근 전문가들은 감정적인 눈물이 정신적인 충격을 없애준다는 데 한결같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눈물은 웃음과 함께 진리께서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큰 선물이자 우리 몸의 ‘자연방어제’다. 웃음이 우리의 기분을 바꿔주고 면역력을 높이는 것처럼, 울음도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준다.
가슴에 맺힌 슬픔과 한을 눈물에 담아 펑펑 쏟아내야 몸 안의 독소를 뽑아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분노·화·미움·슬픔처럼 눈물로 덜어내야 하는 일들을 참고 외면할 때 가슴 속에 쌓인 감정들은 독소가 되고 몸의 생기마저 빼앗아 간다. 웃음이 파도라면 통곡은 해일이다.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상처들을 완전히 끌어올려 쓸어내지 않으면 마음에 병이 생기고, 이것은 곧 몸의 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