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 기자의 경제편편] ‘통화보험’ 깨버린 한국과 일본
[아시아엔=차기태 기자] 한국과 일본 사이의 통화교환(통화스와프)이 결국 마감된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100억달러 규모의 양자간 통화교환 협정을 오는 23일 만기도래와 함께 종료시키기로 양국 재무당국과 중앙은행이 합의한 것이다. 이로써 양국간의 통화교환은 14년만에 마감됐다.
이번에 만기와 함께 중단되는 통화교환은 양국이 위기 상황에서 상대국 통화를 100억 달러까지 바꿔 주도록 한 계약이다. 양국의 통화교환은 지난 2001년 7월 20억달러로 시작해 지난 2012년 한때 700억달러까지 늘어났었다.
그러나 2012년 8월 독도 문제를 계기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2012년 10월 만기 도래한 570억달러 규모의 통화교환이 종결됐고 2013년 7월에도 만기를 맞은 30억달러가 끝났다.
양국은 이번 통화교환에 대해 경제적 요인만 고려했고 정치·외교적 요인은 감안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두 나라의 경제여건이나 외화보유상황, 그리고 국제수지 동향 등을 볼 때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 양국에 통화교환이 절실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일본은 워낙 많은 외환보유액을 자랑하고 있으니 새삼 통화교환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원전을 세운 이후 국제수지가 나빠지기는 했지만, 걱정할 수준은 전혀 아니다.
한국도 과거 우려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이 사실이다. 지난 1월말 외화보유액은 3622억달러를 헤아리게 됐고, 지난해에는 894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 외환보유액도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일어났을 때보다 1천억달러 이상 늘어났다.
한국은 또한 현재 중국, 아랍에미리트, 말레이시아, 호주, 인도네시아 등과도 양자 통화교환을 맺어두고 있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M) 체제에서도 유사시 384억달러를 인출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일 통화교환을 굳이 종졀지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통화교환은 외부의 충격으로 말미암아 경제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서로 돕자는 것이다.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앞날의 일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미리 대비하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통화보험’을 들어두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과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거의 바닥 수준까지 줄어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자칫하면 석유수입도 불가능해지고 공장이 모두 멈춰버릴지도 모르는 아찔한 순간까지 이르렀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일어났을 때에는 그렇게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의 외화보유 상황을 걱정했었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 외환은 되도록 넉넉하게 쌓아두는 것이 안전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일본의 은행들이 우리나라 은행들에 공여했던 여신을 줄줄이 회수했었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의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 결국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내밀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본과의 통화교환은 외환위기 때와 같은 자금회수 사태를 방지할 안전장치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돼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과의 통화교환을 끝낸 것은 아쉽기 그지 없다.
이번 결정에는 최근 한국과 일본의 냉랭한 관계가 한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정치적 현안을 둘러싼 시각차와 줄다리기는 당분간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통화교환은 별개로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서로 호혜적으로 논의하는 가운데 관계개선의 실마리를 풀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실마리 하나를 없앤 것이다.
이제 와서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대신 한국은 결제체질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졌다. 유사시 써먹을 수 있는 ‘통화보험’ 하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외환부족 사태가 다시 초래되고 일본에 손을 벌려야 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길 경우 일본은 우리에게 더욱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본과의 경제관계도 다른 방식으로 긴밀하게 이어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볼 때 무릇 인접한 나라들 사이에는 서로 친밀하게 지내기가 오히려 더 어려운 법이다. 그렇지만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무래도 이롭다면, 그런 방향으로 노력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