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찬 코멘터리] 영화 ‘국제시장’과 소설 ‘허삼관 매혈기’

<사진=JK필름>

‘국제시장’ 배경 노일대(老一代) 아버지의 본색

[아시아엔=안병찬 언론학박사] <국제시장> 영화의 시영(始映)자막(오프닝 크레딧)을 보니 영어제목이 ‘아버지에 드리는 송시’(頌詩· Ode to My Father)’다.

이 영화 속에는 나 자신의 초상도 들어있다. ‘덕수’(황정민 분)는 영화 첫 머리에 부산 용두산 비탈에서 부두를 내려다보며 선장이 되고 싶었다고 술회한다. ‘덕수’는 젊은 날 해양대학에 합격하지만 찢어지게 궁핍한 삶을 면해보려고 파독광부의 길을 택한다.

필자가 부산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956년 초 추운 겨울날이다. 역전에 있는 ‘거상다방’에서 차 한잔으로 언 몸을 녹인 후 해운공사를 찾아가 국립해양대학 합격자 벽보를 확인했다. 내가 국립해양대학을 택한 것은 선장의 꿈 때문이 아니라 학비가 전액 국비로 지원되기 때문이라는 점이 덕수와 다르다. 해양대학을 졸업하던 해, 나는 본의 아니게 부산 땅에서 1년 가까이 굶주리며 낭인(浪人)생활을 했다. 당시 외제 물산의 집산지인 국제시장의 풍경 중 하나는 판매대마다 미군 하야리아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서양 식빵이 산더미처럼 쌓인 것인데 그 식빵을 실컷 먹어보는 것이 내 소원이었다. 이산가족 문제역시 극중의 덕수와 내 처지는 비슷했다. 또 우리는 모두 분단 월남 땅에 가서 일했는데 극중 덕수는 파월기술자이고, 나는 주월특파원이다.

아버지에 보내는 송시
영화는 오후 5시 태극기 하강식 시간에 시민들이 하던 일,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를 향하여 경례를 해야 하는 억압시대의 풍경을 해학적으로 풍자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이후 영화 <국제시장>의 서사담론은 일방통행을 하며 꼬여버린다. 파월한국군 소부대가 베트콩 부대를 혈전 끝에 물리치고 마침내 주인공 덕수를 위시한 파월기술자들과 월남 반공주민을 구출한다는 설정은 한국판 람보와 같다. 금년은 베트남통일 40주년이자 한국-베트남 수교 23주년이 되는 해, 베트남 다문화 가족 15만명이 한국에 거주하여 이제 베트남은 사돈국가가 되었다는 역사적 현실을 <국제시장>은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이공의 붕괴와 통일베트남의 출발이라는 역사 객체와 계속하여 대화하면서 역사의 유기적인 진행에 조응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사진=NEW>

중국소설 ‘허삼관 매혈기’, 한국영화 ‘허삼관’
<국제시장>을 보기 며칠 전 영화 <허삼관>을 관람했다. 중국의 검색포털사이트 바이두(百度)는 1월 중순 “중국 이야기(故事)가 한국영화로 나왔다”는 제목을 붙여서 한국의 하정우가 영화 <허삼관>을 감독하고 주역을 맡았다고 알리고 있다. <허삼관> 영화 배급사는 이렇게 홍보한다. “돈 없고 대책 없고 가진 것 없지만 뒤끝만은 넘치는 남자 ‘허삼관’ 웃음, 눈물, 콧물 쏙 빼는 아주 특별한 가족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위화(余?) 원작.”

영화의 무대는 한국의 충남 공주이다. ‘6·25사변’이 끝난 후 전화를 입은 공주읍내, 찢어지게 가난한 가장 허정우가 좌충우돌하는 해학적인 줄거리는 시대와 배경이 <국제시장>과 닮은꼴이다.

중국 작가 위화가 쓴 19만자의 장편 <허삼관매혈기>(?三??血?)는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한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특유의 풍자와 해학으로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위화가 그린 중국 아버지의 모습과 한국 아버지의 모습은 근현대사를 어렵게 살아낸 동양문화권의 정서에서 나온 것일 터이다. <국제시장>과 <허삼관> 두 영화의 홍보 전단에 오른 가족사진이 유사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영화라는 대중매체는 시대의 기록이며, 시대의 대중심리와 사회구조의 골격(프레임)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