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찬 코멘터리] 광복 70년 ‘미국주의 vs 서구주의’를 생각한다
탈오리엔탈리즘이 필요한 이유
2015년 을미년 청양(靑羊)의 해에 베트남은 통일 40주년, 한반도는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베트남은 나로 하여금 아시아 사람으로서의 관점을 확고히 다지도록 만든 나라이다.
‘통일열차’ 오디세이
남부 사이공 정권이 패망한 날은 1975년 4월30일이다. 내가 그 도시를 공중 탈출한 후 9개월 1일을 넘긴 1976년 2월 초 어느 날, <한국일보> 편집국 외신부에서 근무하던 나는 갑자기 멀리서 울려오는 열차의 기적소리를 들었다. 베트남이 남북 4300리를 잇는 ‘등싼통녓’(통일열차)을 개통했다는 소식을 외신이 타전하던 순간이었다. 그날 나는 외신기사를 토대로 ‘베트남 통일열차 개통’ 기사를 썼다.
나는 오랜 동안 부산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통일열차의 꿈을 꾸어온 터였다. 오늘도 내 마음 속에서는 한국 비무장지대 장단(長湍)역 터에 있는 녹슨 증기기관차와 베트남의 통일급행열차가 교차하고 있다.
2012년 9월19일 나는 한국기자협회 초청을 받아 ‘한국-베트남 기자 컨퍼런스’에서 특강을 했다. 참가자는 양국의 최고참 언론인 각 12명씩 모두 24명인데, 베트남측은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베트남기자협회장이자 공산당 기관지 <인민> 편집국장인 뚜언 후가 단장이고 박사학위를 가진 언론인도 2명이 들어 있었다. 한국측 참가자는 <한겨레신문> 권태선 편집인, <연합뉴스> 김선한 국장, 정필모 해설위원, <한국일보> 이계성 논설위원 등이었다.
그날 특강에서 나는 분단시기인 1971년 주월특파원 시절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37년간 베트남을 기록해온 사진자료 130장을 파워포인트에 담아서 보여주며 실황을 설명해 나갔다. 특별히 강조한 것은 바로 ‘아시아적 가치’였는데,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아시아적 가치’가 뭐냐고 질문했다. 나는 “아시아인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것은 “아시아의 안광(眼光)으로 세상을 직시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시아적 가치란 ‘탈오리엔탈리즘’의 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베트남은 ‘4·30 항미전승’과 ‘5·7 항불전승’의 정신을 근간으로 삼아 정경분리의 이름 아래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배울 점은 불퇴전의 자주정신이다. 특히 우리는 베트남의 통일운동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 한국과 베트남의 분단과 통일의 조건은 다른 점도, 동일한 점도 있다. 베트남은 대륙 중국에 1000년간 맞서며 독립을 지켜냈고 유럽 강대국 프랑스에는 100년을 저항한 끝에 무조건항복을 받아냈다. 더구나 세계 최강국가인 미국을 상대해서는 20년 전쟁을 벌인 끝에 승리했다. 그 강인한 저력으로 베트남은 스스로 통일을 왕성했다. 베트남은 미국과는 종속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눈높이로 현실적인 전략을 구사한다. 많은 한국인들은 베트남의 자존을 보지 못하고 오직 경제적인 잣대로 베트남을 평가하려 든다. 최근 베트남 달랏대학에서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유태현 전 베트남 대사는 내가 관여하는 주간 <베트남교민신문>(현 <베한타임스>)에 이런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우리가 베트남에 우월감을 가질 근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베트남 국민은 물질적인 풍요보다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여 국가와 개인의 최고가치인 독립과 자유를 국가이념으로 설정한 품위 있는 국민이라고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미국주의와 서구주의
이에 즈음하여 한국사회에 뿌리를 깊이 내린 두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이에 즈음하여 나는 한국사회에 뿌리를 깊이 내린 두 가지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는 한국사회의 주류세력이 선도하는 ‘미국주의’와 ‘서구주의’의 문제다. 이 주류세력을 구성하는 것은 주로 지식인과 권력자인데 미국주의와 서구주의를 동화(同化)하여 마치 “서양 것이 최고다”라고 여기는 모습이다. 그들은 오리엔탈리즘에 젖어있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문명을 주변화하는 서양 중심관이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위압하고 지배하며 재구성하는 서양문명의 관점이고 책략이다.
둘째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우리는 아시아인이면서 동양인이다. 그런데 흔히 우리는 중국문화와 동양문화를 혼동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문화권에 동화한 것이 아니라 범동양문화권에 귀속한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한다. 우리가 ‘아시아의 안광(眼光)’을 우리의 사회문화적 테제로 설정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