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상하원 120명, ‘포크배럴 스캔들’로 시끌시끌

필리핀이 지난 1년여 입법의원(상원 및 하원의원)과 관련된 이른바 ‘포크배럴(pork barrel)’ 스캔들로 시끌벅쩍하다. 포크배럴은 ‘절인 돼지고기를 보관하는 통’으로, 1870년 미국 남북전쟁 중에 흑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며 정부가 그 댓가로 당시 필수 식료품이던 절인돼지고기를 준데서 유래한다. 이 후, 미국의 선거운동기간 중에 특정단체의 기부금 등으로 도움을 받아 당선된 의원들이, 보답하는 차원에서 그 단체의 이익을 위한 프로젝트에 지출하는 예산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필리핀에서는 이러한 예산정책이 미국 식민지시절인 1922년 처음 시행되었다가 얼마 후 중지되었는데, 1986년 시민혁명으로 마르코스정권을 몰아내고 집권한 코라손 아퀴노 정부가 시골개발기금(Countryside Development Fund)이라는 명칭으로 다시 부활시켰다. 이 기금은 상하원 의원들이 낙후된 시골의 개발 프로젝트를 자의로 선정하고 지출하는데 활용되었는데, 2000년 우선개발보조기금(Priority Development Assistance Fund)으로 명칭을 바꿨다.

1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포크배럴 스캔들에 항의하는 시위자들이 횃불과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 기금(또는 예산)이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하다. 입법의원이 지방자치단체장 권한 일부를 행사하여 각 지역구에 대해 프로젝트 일부를 직접 선정하고 예산을 지출을 하는 이 제도가 한국에는 아직 시행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정부예산과는 달리 이 보조기금의 활용은 정상적인 예산수립이나 집행과정 없이 (without going through the normal budgetary process) 이루어진다. 프로젝트도 도로, 교량, 학교건설과 같은 대규모(hard)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장학금, 컴퓨터 제공, 의료지원 같은 소규모(soft) 프로젝트도 의원들 자유재량으로(discretionary) 선정하고 집행한다. 당연히 의원들은 자신의 당선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나 단체에 유리한 프로젝트를 선정하게 될 것이다. 지역구 내에 있는 자신의 사업체나 가족, 친인척들이 직접적으로 수혜를 입는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일도 흔하다.

우선개발기금(일명 포크배럴)에 대한 비리의혹과 이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필자가 처음 필리핀에 와서 생활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항상 있어 왔다. 그러나 기득권층 이익에 부합했기에 비리 실체가 드러난 적이 없었고 폐지 목소리도 힘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3년 7월12일 필리핀의 유력 일간지 에 의해 처음 구체적인 비리혐의가 폭로되었다. 국고 약 100억 페소 (약 2400억원)를 일부 상원의원들 및 하원의원들이 자넷(Janet Lime Napoles)이라 불리는 여성이 설립한 유령회사와 거래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공모하여 횡령하였다는 것이다. 이 스캔들에는 3명의 상원의원들이 핵심인물로 거론되었고 이 후 거의 1년간 조사 끝에 지난 6월20일 상원의원 르빌랴(Ramon Revilla)가 구속 수감되었고, 상원의원 에스트라다 2세 (Jose ‘Jinggoy’ Ejercito Jr)도 6월23일 구속 수감되었다. 나머지 상원의원 엔릴레(Juan Ponce Enrile)는 고령임을 고려하여 조만간 병원 감금(연금)될 것이라고 정부 관계자가 말했다. 말라카냥(대통령궁)은 엔릴레 상원의원의 건강상태를 우려하고 있다. 그는 이미 90세다. 감옥 안에서 생존하기 힘들지 모른다.

포크배럴 스캔들은 단순히 위에 언급된 상원의원 3명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대부분 상원의원들과 하원의원들이 비슷한 비리를 저질러 왔을 것이라고 필리핀 국민들은 믿고 있다. 한달 전에 이 스캔들의 핵심인물인 자넷씨가 그녀와 연루된 상원의원 20명과 하원의원 100명의 명단을 추가로 제출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상원의원 3명에 대한 재판과정 및 결과와 함께 앞으로 더 많은 입법의원들 비리도 파헤쳐질 것인지, 종국에는 이 정책이 폐지될 것인지 국민들은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필리핀 국회는 양원제이며 24명의 상원의원과 250명의 하원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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