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옥의 추억창고] “엄마, 이 금반지는 절대 팔면 안돼!”
여성들은 나이가 들면 몸에 붙이는 장식이 늘어난다. 청춘 시절, 젊음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을 지나 옷 색깔도 조금 더 원색에 가까워야 얼굴색이 살아나는 것 같고, 목걸이나 귀걸이를 달아야 화사해지는 것 같은 심정이 드는 중년쯤이면, 액세서리가 하나 둘, 늘어난다.
소박한 결혼패물이 있었지만 도둑을 맞아 그마저도 없는 나에게는 별로 값 안 나가는 목걸이 귀걸이가 몇 개만 있을 뿐이다. 그것도 몸에 붙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정말 어쩌다가 한번씩 기분전환으로 사용하곤 한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가 다시 하향세다. 불안한 세계경제에 따라 금값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한창 값이 오름세를 타고 있을 때 일찌감치 팔아버리고는 후회했는데 요즘 동향은 또 그 반대의 마음을 갖게 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금붙이는 아이가 돌 때 받은 금반지 한 돈-그나마 도둑이 들었을 때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그리고 퇴직기념으로 받은 금반지가 전부이다. 아무리 금값이 오른다 해도 팔 수 없는 것들이다. 아이 금반지는 추억으로 간직하도록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유일하게 내 것인 금반지는 선물 받은 지는 오래되지 않지만 어머니가 손가락에 끼시던 반지 모양이어서 들여다보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어쩜 이렇게 촌스런 모습일까?” 혼자 중얼거리지만 그래서 더 정이 가는 반지다. 그것을 끼고 다닐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아주 오래된 디자인의 이 반지에 나는 값을 셈할 수가 없다. 반지의 장식적 가치보다는 환금성에 더 의미를 두셨던 어머니들의 반지를 꼭 빼닮았기 때문이다.
세월의 고단함으로 자글자글한 주름이 덮인 손가락에 끼어 있는 그 반지는 비상시 어머니들을 지켜주는 마지막 경제적 힘으로 작용하곤 했다. 내 어머니도 그러셨다. 손가락에 낀 금반지까지 빼서 돈을 만드는 것은 삶의 막바지에 일어나는 일인데 내 어머니의 금반지는 자식들이 한창 성장하며 줄줄이 삼년 터울로 진학 할 때 어머니 손에서 하나 둘 빠져나갔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이런 저런 금붙이를 꺼내서 목돈을 마련하곤 해서 나를 놀라게 했는데 그것도 부족해 손에 있던 것들도 시나브로 빠져나간 것이다.
그 마지막 힘을 자식들 공부에 쏟으신 어머니가 있어 나의 오늘이 있다. 비록 어머니의 반지는 아니지만 내가 가진 유일한 금반지는 때때로 내 어머니, 아니 우리들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이 반지가 우리 시대 어머니의 힘으로 다가와 더 소중하다.
이제 나는 어머니에게 이 반지를 선물하려고 한다. 그리고 약속을 꼭 받아낼 것이다. “엄마,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반지는 절대 팔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