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KBS 독립’ 없인 ‘대한민국 미래’ 없다

정필모 <한국방송> 보도위원

KBS 사태는 이사회의 길환영 사장 해임 제청안 가결에 이어 청와대가 해임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렇다하더라도 그것이 사태 해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거기에는 권력 지향적 사장의 문제만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영방송 KBS가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휩싸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형식적 제도의 도입에도 실질적 내용 면에서 공영성을 담보할 수 없는 한국의 후진적 정치문화와 이를 뛰어넘을 수 없는 제도적 결함에서 찾을 수 있다.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청와대가 지명하는 사람이 사장에 임명될 수밖에 없는 지배구조가 문제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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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비슷한 사장 임명구조를 가진 영국의 BBC는 왜 정치적 독립이 가능한가? 한마디로 영국의 정치문화가 한국과 다르고, BBC 내부의 조직문화와 구성원들 의식 또한 KBS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KBS가 스스로 정치적 독립을 이룰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를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첫째 이유에 대해서는 그동안 너무 많은 논의가 있어 왔기 때문에 굳이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둘째 KBS 내부문제를 살펴보자.
KBS의 조직문화는 정치적 압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적 원인은 우선 관료적 조직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KBS의 뿌리는 국영방송이다. 제도는 물론이고 인적 충원이나 운영시스템도 그것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공영방송제도가 도입된 지 41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영시절의 관료적 조직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조직에서 인사권을 쥔 사장의 지시와 명령은 절대적이다. 지위와 서열을 중시하는 계서적(階序的, hierarchical) 통제가 일상화된다. 이렇게 되면 방송제작에 필수적인 창의성과 자율성은 숨 쉴 공간이 없다.

사장과 고위간부들의 인사권은 직원들의 부서배치, 승진, 보직임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물론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공개된 기준과 원칙, 투명한 절차에 의해 인사권이 행사돼야 한다. 하지만 관료적 문화가 팽배하고 위계질서에 따른 통제가 일상화된 조직에서는 ‘선택과 배제의 논리’에 의해 조직 내에서 살아남기 위한 충성경쟁이 가열되게 마련이다.

여기서 생겨나는 또 다른 문제가 내재화(內在化; internalization)와 자기검열이다. 즉, 내부 구성원들이 오도된 조직논리에 동화되면서 지시 이전에 스스로 알아서 윗사람의 의도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방송사 조직 내부의 제작 자율성이나 직업적 독립성 및 때로는 불가피한 저항성은 극도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자기파괴적 내적 통제의 완결성을 갖게 된 관제사장 하의 KBS 실상이다.

이 점이 바로 구성원의 자각과 실천의지, 그리고 관료적 조직문화 혁신이 절실한 이유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불공정 보도로 촉발된 KBS 문제의 근본적 해결방안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흔히 말하듯이, 이사회가 통과시킨 해임안을 대통령이 수용하고 새로 사장을 선출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행태로 미루어 청와대가 KBS의 정치적 독립을 인정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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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정치권이 합의하고 청와대가 그것을 받아들여 이사회의 ‘특별다수제’ 채택 등 사장 선임제도가 개선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KBS 바로세우기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 궁극적 목적은 KBS가 권력과 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저널리즘의 원칙과 가치’에 충실하게 공적 책무를 다하는 데 있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분출된 내부 구성원들의 공영방송인으로서의 사실 자각과 그 책무에 대한 실천의지다.

이들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앞서 지적한 관료적 조직문화의 혁신이다. 공영방송의 운영시스템은 본래 내적 다원성을 바탕으로 작동돼야 한다. 즉, 다양한 의견을 가진 내부 구성원들이 전문성과 직업윤리를 바탕으로 민주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사장이나 고위간부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이 자연스럽게 뉴스와 프로그램 제작에 반영돼야 한다. 그래야만 집단지성이 발현되고 외부의 부당한 압력과 고위간부들의 독선도 막을 수 있다. 이는 방송법이나 방송강령 등에서 보장하는 제작 자율성이나 창의성의 바탕이 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의 참여이다. 공영방송 KBS는 한국사회가 합의한 가치와 제도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주인은 국민이다. 따라서 KBS가 공적 책무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성원하는 역할도 마땅히 시민사회의 몫이다. 이는 KBS가 청와대 등 정치권력이 아니라 주인인 국민에게 책임지는 참 공영방송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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