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내 안의 ‘화’를 내버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으려면

    교회는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곳입니다. 내 안의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곳입니다. ‘내 탓이요’만 하다가 죽게 만드는 종교사상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당 뜰만 밟지 말고 흑암의 나라에서 빠져나오는 비밀을 누립시다. 하나님을 잘 믿었지만 눈을 감고 살았다는 바울의 고백을 가슴에 새기고 기억합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영적인 눈을 뜨고 보니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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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상익의 시선] 기억마저 아스라이···”엄마, 엄마, 엄마”

    80대의 친척 아저씨가 카톡으로 글을 보내왔다. 우렁이 새끼들은 제 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크는데 어미 우렁이는 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다 주고 빈껍데기만 흐르는 물길 따라 둥둥 떠내려간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새끼 우렁이들이 “우리 엄마 두둥실 시집가네”라고 하며 슬퍼한다고 했다. 그와 반대로 가물치는 알을 낳은 후 바로 눈이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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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민주항쟁 특별사진전, ’60년 한국현대사’를 소환하다

    [아시아엔=구본홍 아시아기자협회 이사장] 우리의 6월은 운명인가. 6월의 역사는 너무 어둡고 무겁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이 6월 25일에 발발했고 두 차례 연평해전도 6월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이런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6월 6일을 현충일로 제정해 기념하고,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라 칭했다. 전쟁뿐 아니다. 왜 하필 6월인지….. 1964년 6월 3일, 학생들의 한일회담반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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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상익 칼럼] “일흔살 ‘나’, 좀더 정직해 아무 후회 없이 죽었으면”

    삶에서 여러 고비가 있었다. 17살때 재벌집 아들의 칼에 얼굴을 맞아 마흔 바늘 정도 꿰맨 적이 있었다. 칼이 목의 경동맥을 끊었으면 죽을 뻔했다. 재벌 집은 돈으로 상황을 무마시켰다. 그걸 보면서 나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배웠다. 법대를 지망하게 된 계기가 됐고 고시공부의 원동력이 됐다. 후일 저널리스트 겸 변호사가 되어 청부살인을 한 준재벌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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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직 묵상] 왜 나를 주목하는가?

    함께 기도할 제목 1. 말씀 안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죄없이 함’을 받는 새날 되게 하소서 -오늘도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며, 예수님을 기꺼이 따르는 증인된 삶 되게 하소서 2. 나라와 민족 -피가 난무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다양성과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 이슈들을 분별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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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깐묵상] “소망은 굳이 맥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편 71편 시편을 읽으며 다소 당황스러운 부분은 탄식에서 찬양으로의 전환이 너무 급격하다는 것입니다. 깊은 탄식이 이어지다가 뜬금없는 찬양이 등장하고, 슬픔을 삼키다가도 기쁨의 노래가 갑자기 툭 튀어 나오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시 71:14) 다윗의 탄식기도에 맥락없이 등장하는 소망의 기도, 탄식하는 대목에서 갑자기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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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깐묵상] “얼굴 봤으니 그거면 충분하다”

    시편 67편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시 67:1-2) 얼굴 한번 비추는 게 그런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주머니에 있는 거 털어주는 것보다 그게 훨씬 대단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화로 해도 될 일을, 문자 보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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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상익 칼럼] ‘삼성가의 손자’와 이병철, 그리고 스티브 잡스

    삼성가 이병철 회장의 손자라는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다. 이병철 회장의 맏아들과 당시 황진이라는 역을 맡았던 여배우 사이에서 난 자식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그 여배우와 아이를 미국에 가서 살게 했다. 성인이 되고 다시 아버지가 된 삼성가의 손자의 호적에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백지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를 삼성가의 호적에 입적시키는 소송을 했었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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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질·감정대로 사는 ‘자존심’, 하나님 언약대로 사는 ‘자존감’

    성질대로, 감정대로 사는 것은 자존심이고 하나님의 언약대로 사는 것이 자존감입니다.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살면 비교의식·열등의식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자존심을 가지고 살면 감정을 다스릴 힘이 없지만 자존감으로 살면 자유와 해방이 옵니다. 자존심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셔서 부르심을 받은 존재이며, 하나님의 절대계획에 따라 살아간다는 자존감으로 하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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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깐묵상] “아플 때는 아파해야 합니다”

    시편 60편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시 60:1) 회복시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버려 흩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기쁨과 소망을 주시는 분도, 고통과 절망을 주시는 분도 동일한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있는데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지만 ‘나라고 왜 고통을 겪지 않아야 하는가?’ ‘하나님에게 기쁨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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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상익 칼럼] ’50억클럽’과 ‘참회한 악마’ 오헤어 변호사 부자

    언론에 ‘50억 클럽’이란 말이 떠돈다. 거액의 댓가를 받는 변호사들을 말한다. 변호사에게 거액의 돈은 어떤 때 들어올까? 정의로운 일을 했을 때 받는 돈일까? 내가 아는 한 검사장은 재벌 회장의 입건을 유예해주고 거액을 받았다고 했다. 그건 부자의 죄를 덮어준 데 대한 댓가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왔다. 나도 그런 유혹을 받은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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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우근 칼럼] “6?25는 ‘북한의 남침’…’사르트르’ 틀리고 ‘레이몽 아롱’이 옳았다!”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한반도를 남북으로 두 동강 낸 6?25전쟁은 프랑스 지성계도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공산당 기관지 <뤼마니테>는 6?25가 ‘남한의 북침’이라는 소련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고, 작가 장 폴 사르트르도 이에 동조했다. 사르트르와 고등사범학교 동기이자 나치 치하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함께 했던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은 <르 피가로>에 6?25가 ‘북한의 남침’이라는 정반대의 글을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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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깐묵상] 하나님은 있다? 없다?

    시편 53편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편 53:1)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없다고 우겨서 없는 존재도 아니고,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있는 존재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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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겸 칼럼] “학교·군대·직장 폭력, 이렇게 극복했다”

    [아시아엔=김중겸 이실학회 이사장, 전 경찰청 수사국장, 충남경찰청장 역임]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살아있던 어릴 적 충남 장항에서는 하이칼라 머리에 구리스grease 기름을 바른 분의 아들로서 핸섬보이였다. 선망의 대상이었다. 원제가 호위하고 영모가 거들었다. 4학년 2학기에 홀로 서울로 이른바 유학. 담임 여선생까지도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30cm 쇠자로 손바닥 찰싹찰싹 내리쳤다. 마귀할멈 같았다. 얼굴 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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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마초 게이트웨이①] 대치동 학원가 ‘마약음료’까지

    필자는 1990년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연구원 제1연구실(정책연구실) 실장으로 근무할 당시 청소년 분야의 다양한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청소년 약물남용(drug abuse) 실태와 예방대책’에 관한 연구도 했다. 또한 마약류 퇴치를 위하여 1992년 설립된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Korean Association Against Drug Abuse)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1990년 2월 뉴욕에서 개최된 ‘UN 마약류 특별총회’에서 1991년부터 2000년까지를 ‘유엔 마약류 퇴치 10개년(UN Decade Again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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