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

군사평론가; 육사 28기, 국방부 군비통제관, 국방부 정책기획관 역임
  • [김국헌의 직필] ‘점잖은’ 정 총리가 화난 이유? ···원전부품 위조·대사관 직무유기

    원전의 안전과 직결된 주요 부품의 시험성적을 위조해 납품한 것은 천인공노할 범죄라고 정홍원 총리가 질타하였다. 정 총리 같이 강직하고 점잖은 분이 이런 극단적 언사를 쓴 것은 국민들의 분노와 비난을 대변한다. 여기에 관계된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은 대부분 정확성과 정밀성이 몸에 밴 과학기술자들이 아닌가? 위조부품을 쓰게 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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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직필] ‘김일성 족적’ 알면 ‘3대세습 비결’ 보인다

    1910년대와 1920년대 만주 항일운동의 대들보는 민족주의자였다. 그러나 1920년대 말부터 민족주의자들의 무장 항일투쟁은 힘을 잃어갔고 1930년대 초부터는 공산당의 유격전이 만주에서 조선독립운동의 대세가 되어갔다. 1931년 이후 중국공산당은 만주의 중국 및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을 규합하여 항일연합전선을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은 중국인 양정우가 조직한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軍) 제1사(師)이다. 1933년에 이르러 양정우의 부대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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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직필] 김정은이 B-52 출현에 ‘기겁하는’ 이유

    강건의 본명은 강신태이다. 강건은 동북항일연군에서는 제5군 9단 정치위원이었고 88여단에서는 김일성과 같이 대대장이었다. 해방 이후 강건은 김일성과 함께 바로 귀국하지 않고 보안간부훈련대대를 위한 군사경력자들을 모을 때 김광협과 함께 입북하여 나남의 2사단장이 되었고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자 총참모장이 되었다. (이래로 북한군은 2·8절을 건군절로 기념하여 왔으나 1978년부터 김일성이 항일 유격대를 조직하였다는 1932년(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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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직필] ‘김일성의 책사’ 김책과 맥아더

    김책은 동북항일연군에서는 군 정치위원으로서 사장(師長)이었던 김일성보다 상위에 있었고 88여단에서는 대대 정치위원으로서 대대장이었던 김일성과 동격이었다. 8.15 후 김일성과 함께 입북한 김책은 스탈린에 의해 북한의 지도자로 발탁된 김일성의 오른팔로서 김일성 그룹의 참모장 역할을 하였고 특히 평양학원의 원장으로서 북한군 창건의 핵심이 되었다. 6.25 남침 시작 후 3일 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득의만면하던 김일성은 6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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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직필] 김일성의 ‘사천왕’ 최현의 아들 최룡해

    김정은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중인 최룡해는 최현의 아들이다. 최현은 동북항일연군에서부터 김일성과 동고동락한 사이다. 동북항일연군에서 최용건은 7군장, 김책은 3군 정치위원, 김일성은 2군 6사장, 최현은 2군 5사장이었다. 군(軍)은 실제로는 1,000명 규모의 연대급, 사(師)는 300명 정도의 대대급 규모였다고 판단되는데 각 제대의 명칭이 과장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일본군을 기만하고, 다른 하나는 미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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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김국헌의 직필] “창이 한발 짧으면, 한걸음 앞으로 나가라”

    소련군은 포병을 ‘전쟁의 신(神)’이라 부른다. 일본 관동군이 1939년 ‘노몬한 사건’(할힌골 전투)을 일으켰을 때 돌격전법에 익숙해있던 일본군은 소련군의 화력전투에 녹았다.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이 공세로 전환할 때 전 전선에서 카튜사 포를 쏘아댔는데, 독일군은 이를 ‘스탈린의 오르간’이라고 부르면서 그 위력에 경악하였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막대한 집중 화력을 퍼붓는 방사포의 위력은 대단하다. 1969년 중공군이 우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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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직필] 박근혜-시진핑 회담과 ‘파로호’

    평화의 댐은 전두환 대통령 당시 북한의 금강산 댐 수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국민성금으로 조성되었다. 박정희가 김대중 등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부고속도로를 추진한 혜안과 강단에 대해서는 많은 신화가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전두환은 집권과정에서 워낙 욕을 많이 먹어서? 평화의 댐 건설이나 한강 개발에 대한 평가는 소리가 많지 않다. 5.18 광주민주항쟁 기념식에 ‘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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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직필] 대통령의 참모 장악법 “전화 5번 울려도 안받으면 잘라라”

    후배들과 부하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전화는 다섯 번이 울리기 전에 받을 것, e메일은 하루를 넘기지 않고 볼 것. 근무 중 음주는 한 잔을 넘기지 말 것. 문제는 ‘근무 중’이다. 간부에게 근무는 오후 6시 퇴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장교, 부사관은 영외근무자다. 병사와 같이 병영에서 24시간 대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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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김국헌의 직필] DMZ, 남북관계 새 장 여는 통로로 ‘최적’

    김정은 체제가 순항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 못한다. 그러나 일단은 김정은 체제 아래서라도 북한동포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개혁·개방에 나서도록 유도하고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대북전략과 통일정책의 큰 줄기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과 중국, 유엔, 그밖에 세계 여러 나라도 이 방향에서 역할을 나누어 노력해야 한다. 문제는 북한체제 자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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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직필] ‘정보기관스캔들’ 명해결사 레이건

    1986년의 이란·콘트라 사건은 레이건 대통령 정부를 뒤흔든 일대 스캔들이었다. 미국은 레바논의 친이란계 무장단체에 납치된 인질을 석방시키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통하여 ‘적대국’ 이란에 고성능 미사일을 공급하고 그 대금으로 니카라과 공산정권에 반대하는 콘트라에 무기를 공급하는 비밀작전을 폈는데 그 과정에서 콘트라에 무기를 공급하던 항공기가 추락하여 미국이 이란에 미사일을 공급한 것이 밝혀졌다. (이란은 후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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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직필] 영국의 제국 경영술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apartheid)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 데 대해서 마가렛 대처는 세계의 많은 비판적 여론과 유럽의 비우호적 자세, 무엇보다도 Commonwealth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아프리카를 압박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대처는 남아프리카를 고립시키는 것은 오히려 개혁-인종차별의 철폐-에 장애가 될 것이며 남아프리카를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면 시킬수록 그 피해는 소수 백인보다는 다수 흑인에 돌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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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김국헌의 직필] 박대통령, ‘박정희 정보기관 악용’ 답습해선 안돼

    국가정보원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세계적인 뉴스감이다. 노무현 정부 때 국방부 검찰단이 육군본부를 압수 수색한 일이나 이명박 대통령 당시 검찰이 경호실을 수색하겠다고 한 일이나 모두 국가기능이 정상적으로 수행되는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카터는 주지사에서 대통령이 된 사람으로 재임 중 어이없는 일이 많았다. 그는 서방진영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독재정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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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직필] 유럽 위기에서 배워야 할 것들

    유럽연합(EU)에 대한 유럽인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유럽대외관계이사회는 EU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스페인은 72%, 영국은 69%, 이탈리아는 53%, 독일은 59%, 프랑스는 56%, 이탈리아는 53%, 폴란드는 42%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EU의 역할과 능력에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EU COMMISSION의 집행위원장은 유럽의 긴축정책은 포퓰리즘과 민족주의의 기승으로 위협받고 있으며 성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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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직필] 동맹간 신뢰가 중요한 이유는?

    1986년 4월 미국이 리비아를 공습하였을 때 영미관계는 상당히 불편한 상태였다. 1985년 12월 로마와 비엔나 공항, 그리고 1986년 9월 비엔나 공항, 1986년 9월 서베를린의 디스코 테크에서 폭탄테러가 연이어 일어났다. 특히 서베를린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배후에 리비아의 카다피가 연관되어 있음이 들어났는데 이를 계기로 레이건은 카다피를 응징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대처는 리비아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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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직필] 한국외교, ‘삼각편대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미 ‘동맹’, 한-중·일·러 ‘협력’, 한-ASEAN ‘유대’ 마가렛 대처는 대외정책에 있어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가장 중요시하였는데 미국의 지도적 역할을 지원하는 것을 하나의 사명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영미관계 또는 대처 수상과 미국 대통령의 관계가 항상 순탄하였던 것만은 아니며 간혹 이해관계나 감정상의 충돌도 없지는 않았다. 그중 대처와 레이건의 관계는 8년 동안 더할 나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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