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0회 만해대상 시상식이 2026년 9월 9일 강원 인제에서 열렸다. 평화대상은 니시모리 시오조 전 일본 고치현의회 의장, 실천대상은 박준영 변호사와 안규리 라파엘나눔 이사장, 문예대상은 정호승 시인과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이 각각 받았다. 다음은 정호승 문예대상 수상자의 소감 전문이다. 현장 발언을 옮기되 고유명사와 명백한 음성 인식 오류, 문장 호흡만 바로잡았다. <편집자>
얼마 전 작은형제회 신부님 한 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인은 시인의 존재를 살고 따른다.”
그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습니다. 지난 50여 년 동안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진정 제 존재를 살아왔는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제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그 존재를 묵묵히 따르며 살아왔는지 자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나는 시인이라는 존재를 살고 따르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과연 시인이라는 존재에 진실했는지, 허상과 허명에 매달려 정신없이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아무리 진실을 향한다고 해도 시를 통해 거짓말을 얼마나 했는지 생각하니 부끄러울 뿐이었습니다.
그 무렵 뜻밖에 만해대상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순간 누가 제게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습니다. 불타 무너져 내린 집을 막연히 바라보던 제 존재가 문득 깨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만해대상 수상은 제 존재를 분명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시인이라는 존재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 시집을 15권 출간했습니다. 살아생전에 시집 한 권을 내지 못한 윤동주 시인이 있고, 한 권의 시집을 남긴 한용운과 김소월 시인이 있는데 저는 너무 많은 시집을 출간했다는 자괴감에 더는 시집을 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만해대상 수상 소식은 그 생각을 한순간에 바꾸어놓았습니다. 제가 시인이라는 존재를 살기 위해서는 언제나 현재성 속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만해문예대상을 받게 된 까닭은 지금까지 이어온 시인의 삶뿐 아니라 앞으로 이어갈 시인의 삶의 가능성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시인으로서 내일의 존재를 스스로 소멸시켜서는 안 됩니다. 시인의 존재를 살기 위해서는 언제나 시를 쓰는 현재성 속에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제 그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젊은 날 만해 선생을 찾아 나선 적이 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 선생의 묘소가 있는 서울 망우리역사문화공원에 다녀왔습니다. 만해 스승의 묘소는 흰 눈에 덮여 있었고, 독립의 의지를 꺾지 않은 시인의 정신이 흰 눈발처럼 내리고 있었습니다.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는 신발을 벗고 향을 올렸습니다. 선생이 찾았던 시의 정신을 가슴에 새기며, 광복을 한 해 앞두고 세상을 떠날 때 얼마나 독립을 염원했을까 생각하니 발길을 돌리기 어려웠습니다.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만해기념관에서는 <님의 침묵> 초판본과 유품을 보았습니다. 선생이 서명한 3·1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의 서>, <조선불교유신론> 친필 원고도 만났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백담사에 가서 선생이 <님의 침묵> 88편을 집필할 당시의 시 정신을 찾아보았습니다. 올해가 마침 <님의 침묵> 출간 100주년이어서 의미가 더욱 깊습니다. 대한민국 시인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만해 선생은 제 시의 스승입니다.
만해 선생이 제게 가르쳐준 것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민족적 정통성입니다. 한국 현대시는 1925년 출간된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1926년 출간된 만해 선생의 <님의 침묵>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해 선생은 우리 민족의 한과 비애를 시의 밑바닥에 담았습니다.
둘째는 서정성입니다. 선생의 시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누구나 읽으면 알아차릴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쓰였고, 일상의 언어로 구체화됐으며 시의 곳곳에 서정의 물기가 배어 있습니다.
셋째는 영원성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영원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시는 당대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성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만해 선생에게 배웠습니다.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면 역설과 반어입니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역설을 통해 시가 역설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크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이 순간 만해 스승을 통해 시인의 본질적 가치를 다시 깨닫습니다. 시인의 삶은 선과 진실, 진리의 가치를 추구해야 하며 시인의 죽음 또한 그 가치의 결과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해 선생이 바로 그런 시인입니다. 한국 현대 시인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있는 반가사유상과 닮은 분을 한 분만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만해 선생을 꼽겠습니다.
지금 만해 선생의 반가사유상 같은 침묵의 말씀이 들리고 고요한 미소가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