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주말특집] 광복 81년, ‘기억’에서 ‘발굴’로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정부 공식자료와 중앙·지역언론의 기획·현장취재, 방송, 국내외 통신·외신이 전한 기록을 한데 모았다. 독립운동가와 후손의 오늘, 지역에 남은 항일의 흔적, 방송이 다시 조명한 인물, 그리고 8월 15일 서울·도쿄·평양에서 나온 움직임을 함께 살폈다. 확인 가능한 자료와 보도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편집자>
광복 81년. 오늘의 기록을 따라가면 광복절은 경축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포상이 결정됐지만 후손을 찾지 못한 독립유공자들, 러시아 문서에서 뒤늦게 행적이 확인된 독립군 병사,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독립유공자 후손,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지역 항일유적, 유관순과 함께 만세를 외쳤으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남동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조간신문 보도 이후에는 또 다른 8월 15일의 장면이 더해졌다. 서울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북한에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대화를 제안했다. 도쿄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찾지 않은 가운데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과 오노다 기미 경제안보담당상이 참배했다. 평양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소련군 전사자를 기리는 해방탑을 찾았다. (Reuters)
훈장은 있는데 받을 후손을 찾지 못했다…7622명
출처: 국가보훈부 관련 자료·보도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포상이 결정됐지만 후손을 찾지 못해 훈·포장과 표창을 전달하지 못한 독립유공자가 7622명에 이른다. 올해 광복절에도 독립유공자 포상이 이어졌다. 이 숫자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독립운동의 공적을 새롭게 찾아내는 작업과 함께 이미 공적이 인정된 유공자의 후손을 찾아 포상을 전달하는 작업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가명이나 이명을 사용했거나 가족관계와 본적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고, 후손이 해외에 흩어져 있는 사례도 있다. 광복 81년에도 독립운동가의 기록과 후손을 찾는 일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
러시아 문서에서 되살아난 독립군 병사 박경환
출처: 한국일보
한국일보가 광복절을 앞두고 취재한 고려인 4세 이리나 박의 가족사는 해외에 흩어진 독립운동 기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증조부 박경환의 독립운동 행적은 증손녀 이리나 박이 러시아 자료를 찾아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에 알리면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한국일보는 박경환이 만주와 연해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했으며 청산리전투에도 참여했다고 전했다.
이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크다. 독립운동이 한반도 안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주와 연해주, 중국과 중앙아시아, 미주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자료는 지금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다. 광복 80년을 넘긴 지금 독립운동사 발굴은 국내 기록만으로 완성하기 어렵다. 해외 문서보관소와 현지 기록, 후손들이 간직한 자료를 함께 찾아야 한다.

독립유공자 후손 절반, 월평균 가구소득 200만원 미만
출처: 매일신문
매일신문은 광복절 기획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경제적 현실을 짚었다. 광복회가 지난해 독립유공자 후손 850명을 조사한 결과 월평균 가구소득이 200만원 미만이라고 답한 사람이 443명으로 52%였다. 기사에는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의 손자 이재윤씨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하다 현재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사연도 소개됐다.
국가가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 포상하는 일과 그 후손들이 오늘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살피는 일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예우’가 기념식과 훈장에 머무르는지 실제 생활에까지 닿는지 돌아보게 하는 지역언론의 보도다.
광주·전남 항일유적, 관리의 빈틈
출처: 전남일보
전남일보는 광복절을 앞두고 광주·전남 지역의 항일유적 관리 실태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일부 유적은 잡초가 무성하거나 시설물이 낡고 안내문을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라고 보도했다. 독립운동의 역사는 서울의 주요 기념관에만 남아 있지 않다. 의병과 학생운동, 비밀결사와 만세운동이 벌어진 지역의 구체적인 장소들이 함께 보존돼야 독립운동사의 전체 모습도 남는다.
전국 단위 언론이 놓치기 쉬운 ‘우리 동네의 독립운동’을 발굴하고 기록하는 것. 지역언론의 중요한 역할이자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방송이 다시 찾은 남동순
출처: KBS·광복절 방송 관련 보도
KBS 1TV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 <관순 동순>은 남동순을 조명한다. 남동순은 유관순과 함께 3·1운동에 참여하고 옥고를 치렀지만 유관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다. 광복절 방송이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을 되풀이하기보다 기록 속에 가려져 있던 사람을 다시 불러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방송은 글과 사진만으로 남은 독립운동가의 삶을 영상과 공간, 후손의 증언을 통해 현재의 시청자에게 연결할 수 있다. 광복 80년 이후 방송의 역사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역할 가운데 하나다.
조세이탄광 136명…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출처: 한일 정부 발표·연합뉴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에서는 1942년 2월 3일 해저 갱도가 무너지면서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183명이 숨졌다. 희생자들의 유골은 80년 넘게 바닷속에 남아 있었다. 일본 시민단체의 오랜 노력 끝에 유해가 수습되기 시작했고, 올해 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발견된 유해의 DNA 감정을 양국이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유골 수습과 신원 확인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연합뉴스)
조세이탄광은 광복절을 과거의 사건으로만 볼 수 없게 한다. 81년이 지났지만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강제동원 희생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박자혜, 신채호의 아내이기 전에 독립운동가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박자혜(1895~1943)는 단재 신채호의 부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이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 따르면 박자혜는 조선총독부의원 간호부로 근무하다 3·1운동 부상자들을 간호한 것을 계기로 간호사들의 독립운동단체 ‘간우회’를 조직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 신채호와 결혼했고, 귀국 뒤에도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에서 여성들을 ‘누구의 아내’나 ‘누구의 어머니’로 기억해온 경우가 적지 않다. 박자혜를 신채호의 부인이 아니라 박자혜 자신의 이름과 행적으로 기억하는 것도 역사 복원의 한 부분이다.
야구장에도 독립운동가 후손이 선다
출처: LG 트윈스 발표 관련 보도·한겨레
광복절인 오늘 잠실야구장에서는 독립운동가 하종진 지사의 후손인 배우 박환희가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 경기에 앞서 시구자로 나선다. LG 구단이 광복절을 맞아 마련한 행사다. (한겨레)
광복절을 기억하는 공간이 기념식장과 박물관을 넘어 야구장 같은 일상의 공간으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형식보다 그 자리에서 누구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가일 것이다.
오전 이후의 광복절…이재명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출처: 정부 발표·Reuters
여기서부터는 오늘 조간신문에는 담길 수 없었던 15일 오전 이후의 소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에 대화를 촉구하며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정부가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제시해온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과도 이어진다. 통일부는 지난 3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평화선언’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
1953년 한국전쟁은 평화협정이 아니라 정전협정으로 총성을 멈췄다. 대통령의 제안이 실제 남북대화로 이어질지는 북한의 반응과 향후 한반도 정세를 지켜봐야 한다.
일본의 8월 15일…총리는 야스쿠니 불참, 방위상은 참배
출처: Reuters·AP
일본은 오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81년을 맞았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하지 않고 공물을 보냈다. 반면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과 오노다 기미 경제안보담당상은 야스쿠니를 찾았다. 야스쿠니에는 약 250만명의 전몰자와 함께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 (Reuters)
AP는 다카이치 총리가 전몰자 추도식 연설에서 일본의 전후 평화 기여를 강조했지만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나 이에 대한 사죄·반성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AP News)
총리가 야스쿠니를 직접 찾지 않았다는 것과 일본의 역사인식이 달라졌다는 것은 같은 얘기가 아니다. 이날 일본 정치권의 움직임은 한일관계와 별개로 일본이 81년 전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계속 지켜봐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평양의 8월 15일에는 러시아가 있다
출처: KCNA·Reuters
북한의 8월 15일에서는 러시아와의 관계가 다시 강조됐다. Reuters가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해 보도한 데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 해방탑을 찾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싸우다 숨진 소련군 전사자들을 추모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양국이 지역의 안보와 안정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Reuters)
서울에서는 대통령이 북한에 평화체제를 위한 대화를 제안하고, 평양에서는 김정은이 북러 관계의 역사적 연대를 강조했다. 같은 8월 15일에 남과 북에서 나온 서로 다른 장면이다.
광복 81년, 기억에서 발굴로
오늘 확인된 기록들을 한데 놓으면 광복 81년의 과제 가운데 하나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포상이 결정되고도 후손에게 전달되지 못한 독립유공자가 남아 있고, 러시아 문서에서는 뒤늦게 독립군의 행적이 발견된다. 독립유공자 후손 가운데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으며 지역의 항일유적 가운데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곳도 있다. 방송은 남동순처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독립운동가를 다시 불러낸다. 일본 바닷속에는 아직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조세이탄광 희생자들의 유해가 남아 있다.
광복을 기념하는 일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기록을 찾아내는 일은 함께 가야 한다. 독립운동은 국내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일본과 미주 등 여러 지역에서 전개됐다. 해외에 남아 있는 자료와 후손들의 기억을 찾아 연결하는 작업도 계속돼야 한다.
광복 100주년까지 19년 남았다. 그때 우리가 몇 번의 기념식을 더 열었는가 못지않게 얼마나 많은 이름과 기록을 되찾았는가도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다.
81년 전 나라의 빛은 돌아왔다. 이제 그 역사 속에서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사람과 기록을 더 찾아낼 차례다.
※ 자료 검색·정리와 초고 작성 과정에서 생성형 AI(ChatGPT)를 활용했으며, 사실 확인과 최종 편집은 아시아엔 편집진이 담당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