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힘은 나아가면서 얻어진다”…멜버른의 다리에서 만난 아이네이아스

Vires acquirit eundo. 라틴어로 ‘힘은 나아가면서 얻어진다’. 멜버른의 도시 모토라고 한다. <사진 황건>

오늘 아침 호텔에서 회의장으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넜다. 멜버른의 겨울 아침은 아직 차가웠다. 강물 위로 찬바람이 불었고, 사람들은 코트를 여미며 빠른 걸음으로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Vires acquirit eundo. 라틴어였다. 곁에는 이것이 멜버른의 도시 모토라고 적혀 있었다. ‘힘은 나아가면서 얻어진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 문장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나는 아이네이아스에 대해 글을 쓰고 있었다. 트로이가 불타던 밤, 그는 아버지 안키세스를 등에 업고 어린 아들 아스카니우스의 손을 잡은 채 도시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어제 아침, 그 아이네이아스의 세계에서 나온 한 문장을 멜버른의 다리 위에서 만난 것이다. 이상한 우연이었다.

Vires acquirit eundo.

그런데 문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며칠 전 수술했던 한 환자가 떠올랐다. 굽힘힘줄, 즉 굴곡건을 다친 환자였다. 힘줄을 봉합하고 나면 수술은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때부터 또 다른 시간이 시작된다. 힘줄이 잘 붙도록 기다려야 하지만, 그렇다고 손가락을 꼼짝하지 않고 있게 할 수도 없다. 너무 움직이지 않으면 주변 조직과 유착이 생겨 손가락이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절한 범위에서 일찍 움직이게 해야 한다.

나는 환자의 검지 손톱에 작은 후크를 하나 붙였다. 특별한 의료기구가 아니었다. 간호사에게 인터넷으로 주문하게 한 작은 후크였다. 그것을 순간접착제로 손톱에 붙이고 고무줄을 연결했다. 수술실에서 쓰던 첨단 장비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장치가 손가락을 움직이게 했다.

손가락은 아직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힘줄도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움직인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오늘 아침 만난 문장을 다시 생각했다.

Vires acquirit eundo.
힘은 나아가면서 얻어진다.

재건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손상된 몸을 수술한다. 끊어진 힘줄을 이어주고, 없어진 조직을 채우고, 상처를 덮는다. 그러나 수술만으로 이전의 몸이 그대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수술은 시작이다. 그다음에는 움직여야 한다. 힘줄이 움직이고, 관절이 움직이고, 환자가 움직이고, 시간이 움직인다. 그 움직임 속에서 조직은 서로 적응하고 기능은 조금씩 돌아온다. 회복은 완성된 상태로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가면서 얻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네이아스의 삶도 그러했다. 트로이를 떠난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바다를 떠돌았고, 카르타고에 머물렀으며, 다시 떠나야 했다. 죽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저승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 그가 얻은 힘은 출발할 때 이미 가지고 있던 힘만은 아니었다. 길이 그를 바꾸었다.

그래서 멜버른 이 도시가 이 문장을 모토로 삼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도시도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길이 생기고, 다리가 놓이고, 강을 건너고, 새로운 사람들이 도착하면서 도시의 힘도 자라난다.

오늘 아침 나는 그 도시의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며, 나는 환자의 손가락을 생각했다. 작은 후크 하나. 고무줄 하나.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손가락 하나. 하지만 그 손가락은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재건이라는 것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과거의 몸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새로운 몸을 배워가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도 그렇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의학을 배우고, 실패와 회복을 보면서 다음 환자를 위한 지혜를 얻는다. 의사도 멈춰 있는 동안보다 환자와 함께 앞으로 나아갈 때 조금씩 강해진다.

나는 해부학 학회에서 「The Visitation」을 발표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두 여인의 태중에 있던 생명을 바라보는 것.

돌이켜보면 그것 역시 ‘가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갔고,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를 떠나 새로운 땅으로 갔으며, 나는 오늘 아침 다리를 건너 회의장으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환자의 손가락은 작은 고무줄의 도움을 받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Vires acquirit eundo.
힘은 나아가면서 얻어진다.

멜버른의 겨울은 아직 춥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다리를 건너고 있다.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더라도, 움직이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회복의 길 위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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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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