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6월 29일. 2002년 제2연평해전이 있었던 날이다. 얼마 전 찾은 서해수호관에서 나는 참수리 357호를 다시 만났다. 선체 측면에는 벌집처럼 총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사진으로는 여러 번 보았지만, 실제로 마주한 탄흔은 달랐다. 작은 경비정이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서 치열한 공격을 받았는지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참수리 357정에 처음 오른 박동혁 의무병이 동료에게 묻는다. “의무실이 어디야?”
동료는 웃으며 대답한다. “네가 서 있는 바로 그곳.”
짧은 대사였지만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작은 함정에는 병원처럼 독립된 의무실이 있을 수 없었다. 의무병이 있는 곳이 곧 의무실이었다. 부상자가 생기면 그는 총탄과 파편이 날아드는 갑판을 뛰어다니며 응급처치를 해야 했다.
영화는 현실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박동혁 의무병은 전우들을 구조하며 응급처치를 하다가 약 3kg에 이르는 파편에 중상을 입었다. 이후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되어 80여 일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 그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래서 박동혁이라는 이름은 나에게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같은 병원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낸 젊은 의무병으로 다가온다.
몇 해 전에는 런던의 전쟁박물관(Imperial War Museum)에서 이라크전에서 전사한 의무병들의 전시를 본 적이 있다. 그들도 총을 쏘기보다 사람을 살리는 임무를 맡았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전장에서 사람을 살리려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사실은 시대와 나라를 가리지 않는 듯했다.
한국전쟁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많은 위생병(의무병)들이 포화 속에서 부상병을 후송하고 응급처치를 하다가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손길 덕분에 살아 돌아온 장병들은 셀 수 없었을 것이다.
요즘 우리 군은 군의관 부족으로 한 명의 군의관이 여러 부대를 담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함정이나 격오지처럼 의사가 상주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의무병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의료기술은 발전했고 원격의료도 가능해졌지만, 부상병 곁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은 여전히 의무병이다.

서해수호관을 나오며 다시 참수리 357호를 돌아보았다. 벌집처럼 남은 탄흔은 24년의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문득 영화 속 그 짧은 대사가 다시 들리는 듯했다.
“의무실이 어디야?”
“네가 서 있는 바로 그곳.”
생각해 보면 의무실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