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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쿠반 압디멘 센트럴아시안라이트 발행인] 지난 5월 19일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킵차크 칸국: 유라시아 초원 문명의 원형’(The Golden Horde as a Model of Steppe Civilization: History, Archaeology, Culture, and Identity)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유네스코의 후원을 받은 이 행사는 20개국 이상에서 35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킵차크 칸국은 문화권에 따라 명칭이 상이하다. 몽골·카자흐스탄에서는 ‘주치 울루스’, 러시아에서는 ‘황금 오르다'(Golden Horde), 이슬람권에서는 ‘킵차크 칸국’으로 불린다. ‘오르다’는 몽골어로 족장의 천막 또는 그 집단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주로 이슬람권 명칭을 따른 킵차크 칸국으로 표기된다 – 편집자주

개최국의 수장인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개막식 연설에서 “카자흐스탄의 새 헌법은 스텝(유라시아 대초원)의 정통성을 계승한다”고 강조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국내외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표면적으로는 역사관에 따른 인식 차이로 보일 수 있으나, 카자흐스탄 지도자의 발언은 그 이상의 무게를 지녔다.
카자흐스탄이라는 한 국가를 넘어서 중앙아시아로 범위를 확장하면 해당 발언은 지역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는 역사의 재해석 흐름과 맞닿아 있다.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현대국가로서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역사적 뿌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카자흐스탄은 일관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카자흐스탄의 역사적 뿌리는 소련 시대나 1991년 독립에서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광활한 초원을 지배했던 왕국의 후손이다”라고 강조해 왔다.

현 카자흐스탄 영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킵차크 칸국은 수세기 동안 유라시아 최대 세력 중 하나로 군림했다. 킵차크 칸국이 분열된 이후에도 그 유산과 전통은 카자흐인이 세웠던 카자흐 칸국을 통해 전수됐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카자흐스탄 역사학계는 킵차크 칸국-카자흐 칸국-현대국가 카자흐스탄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강조한다.
과거 학계는 킵차크 칸국을 정복자의 역사라고 여겼다. 그러나 오늘날 카자흐스탄 학계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제시한다. 킵차크 칸국의 행정, 외교, 무역, 금융 등 각 분야의 성취를 언급하면서 그 유산을 ‘파괴의 상징’이 아닌, 유라시아 문명 발전의 핵심 토대라 재해석한 것이다. 킵카크 칸국은 동과 서의 교역로가 관통하는 국가로, 그 자체로도 여러 문명과 문화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러한 해석이 국제 학술계에서도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토카예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역사적 담론의 범주를 넘어선다. 지역에 기반한 역사적 유산은 현대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지정학적 경쟁이 심화되는 국제사회에서 역사는 국가의 정당성과 서사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이 킵차크 칸국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킵차크 칸국 계승에 대한 의지는 국내에서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국가의 수장이 역사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선조들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킵차크 칸국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수록, 카자흐스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제고될 가능성도 높다.
반면 해외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타났다. 특히 러시아가 그렇다. 러시아의 사관에서 바라본다면, 킵차크 칸국은 러시아의 공국들을 수탈했던 주체에 불과하다. 피지배자 입장에서는 킵차크 칸국을 문명의 중심이자 현대국가의 기원으로 보려는 시도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논쟁을 촉발시킨 토카예프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적인 수사를 넘어선다. 과거의 유산을 재해석해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중앙아시아의 지역적 정서가 담겨있다. 해당 코멘트가 더욱 뜨거워진 이유가 있다. 오늘날 카자흐스탄은 대륙 곳곳을 연결하는 가교로서 ‘유라시아의 요충지’라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다. 회랑 개발, 다국적 프로젝트, 다방향 외교 정책 등을 추진하며 동서의 지정학적 허브를 구축하고자 한다.
카자흐스탄의 킵차크 칸국 계승 의지는 역내 입지를 강화하고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전략이라 볼 수 있다. 과거 광활한 유라시아 초원에서 문명 간 교류를 주도했던 강국의 이미지를 오늘날의 카자흐스탄에 투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토카예프 대통령 발언의 속내는 단순히 카자흐스탄의 역사관을 재정립하는 것이 아닌, 국가 운영 전반과 결부돼 있는 광범위한 전략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럼에도 킵차크 칸국을 둘러싼 논쟁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현대국가들은 통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역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학문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킵차크 칸국의 유산을 둘러싼 논란, 그 이면에는 국가의 운영전략, 민족의 정체성, 국제사회에서의 입지가 다층적으로 맞물려 있다.
아시아엔 영어판: The Legacy of the Golden Horde as an Element of Kazakhstan’s New Historical Policy – THE As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