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자유를 지켜낸 ‘전쟁’인가, 상처로 남은 ‘기억’인가…인천상륙작전 전시문구 앞에서

승리와 피해 사이에서

며칠 전 나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을 방문하였다. 인천에 오래 근무하면서도 정작 이곳을 제대로 둘러본 기억은 없었다. 기념관은 영상관과 전시관으로 나뉘어 있었다. 전시관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지만, 영상관은 20인 이상 단체 예약이 있어야만 15분짜리 영상을 상영한다고 했다. 혼자 방문한 나는 결국 영상을 보지 못한 채 로비에 놓인 사진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젤 위에는 인천상륙작전(Incheon Landing Operation, Operation Chromite) 당시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제목과 설명이 함께 붙어 있었다. 그중 한 장이 오래 눈에 남았다.

바다 쪽에서 바라본 월미도였다. 검은 연기가 섬 위로 치솟고 있었다. 사진의 제목은 “불길에 휩싸인 우리 고장 인천.” 설명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국군과 연합군이 감행한 인천상륙작전은 세계의 전사(戰史)에 남을 위업이었으나, 우리 고장 인천은 피할 수 없는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고 말았다.”

물론 전쟁이 벌어지면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거나 다친다.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정의로운 전쟁이라 하더라도 삶의 터전이 파괴된 기억은 고통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전쟁을 겪은 시민에게 역사는 국가의 서사 이전에 먼저 개인의 상처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문구 앞에서 묘한 당혹감을 느꼈다. 인천상륙작전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었다.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렸던 전세를 뒤집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결정적 작전이었다. 만약 그 작전이 실패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기념하는 공간 안에서조차, 이제는 ‘승리’보다 ‘피해’의 언어가 먼저 놓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단순한 전시문구의 변화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오랜 평화 속에서 살아온 사회는 점점 ‘왜 싸웠는가’보다 ‘얼마나 상처받았는가’를 더 민감하게 기억하게 된다. 영웅과 결단의 역사보다 피해와 상처의 기억이 앞에 놓이는 것이다.

물론 그것 자체가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성숙한 사회라면 두 기억은 함께 존재해야 한다. 인천상륙작전은 자유를 지켜낸 역사적 결단이었고, 동시에 인천 시민들에게는 거대한 희생과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다.

그러나 나는 문득 생각하였다. 세월이 흐르면, 승리의 기억조차 결국 피해의 언어로 다시 기록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순간, 기념관 로비에 홀로 서 있던 나 자신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