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미 공수부대의 고통을 견디는 방식

<AI 생성 이미지>

고등학생 시절, 영락교회의 영어성경반에서 찬송가 ‘Battle Hymn of the Republic’을 자주 불렀다. 그 노래는 정의와 구원, 그리고 어떤 초월적 질서를 향한 믿음을 담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육군3사관학교에서 군의관 훈련을 받으며 나는 ‘독사가’를 배웠고, 유격훈련을 견뎠다. 그러나 공수부대의 상징이라 할 고공강하는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낙하산부대는 국가를 막론하고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공포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들이다. 수천 피트 상공에서의 강하는 단순한 훈련이 아니라, 중력과 신체, 그리고 두려움 사이의 긴장 속으로 몸을 던지는 행위다. 착지의 실패는 곧 골절과 척추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 병사들은 혼자가 아니라 집단으로 존재하며, 그 집단을 묶어주는 것은 명령 이전에 리듬과 구호, 그리고 노래다.

미군 공수부대의 대표적인 노래인 ‘Blood Upon the Riser’s는 이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이 노래는 낙하 중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추락하는 병사의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묘사한다. 그 직설적인 서술은 때로 충격적이지만, 그 안에는 블랙 유머가 스며 있다. 죽음과 실패를 감추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로 풀어내며 집단 속에서 공유한다. 외상은 이 노래 속에서 숨겨지지 않고, 하나의 서사로 전환된다.

반면 한국군 공수부대에서 불리는 ‘독사가’는 전혀 다른 정서를 보여준다. 이 노래는 특정한 사고를 묘사하기보다, “독사 같은 사나이”라는 반복적인 자기 규정을 통해 병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공격성, 인내, 그리고 버텨내겠다는 의지가 전면에 드러난다. 때로는 막걸리와 고향에 대한 언급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것은 억제된 감정의 그림자에 가깝다. 죽음이나 실패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모든 것은 내부로 압축되어 하나의 외침으로 남는다.

이 차이는 단순한 군가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외상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다. 미군의 노래가 고통을 이야기로 풀어내어 외부로 드러낸다면, 한국군의 노래는 고통을 내부에 눌러 담고 이를 견디는 힘으로 전환한다. 한쪽은 외상을 ‘말하고’, 다른 쪽은 외상을 ‘삼킨다’.

군병원에서 근무하며, 나는 간혹 부상당한 미군 병사를 수술할 기회를 가졌다. 코뼈 골절이나 얼굴의 찢긴 상처를 입은 그들의 상태는, 내가 진료하던 한국군 병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수술대 위에 오르기 전, 혹은 회복 과정에서 그들이 자신의 부상을 이야기하는 방식에서는 어딘가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어떤 이는 사고의 순간을 담담하게 설명했고, 어떤 이는 농담처럼 그것을 흘려보냈다.

수술실에서 마주하는 부상의 형태는 같지만, 그것을 견디는 방식은 같지 않다. 나는 그들과 함께 하늘에서 뛰어내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그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낙하산부대라는 존재를 이해하게 되었다. 노래는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지탱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이 몸에 새겨져 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떨어지지만, 그들이 땅에 닿은 이후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일은, 단지 군가를 비교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고통을 견디는 방식을 이해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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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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