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석문섭 칼럼] 나르시시즘의 치료

눈에 보이는 부모 말에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애당초 우리의 능력을 벗어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순종은 놀라운 ‘기회’가 됩니다. 내가 알지 못하던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뜰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상관의 지시에 순종하면 어느새 조직과 업무를 보는 상관의 관점과 시야를 공유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신적인 관점과 시야’를 공유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물 안의 개구리가 드넓은 하늘을 보게 되는 경이로운 경험입니다.-본문에서 <이미지 출처 곽성열님 페이스북>

*잠깐묵상 | 사무엘상 15장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하)

왜 하필 순종일까요?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굳이 순종을 요구하실까요? 인간이 굴복할 때, 하나님은 어떤 쾌감이라도 느끼시는 걸까요? 만약 그저 말 잘 듣는 존재가 필요하셨다면, 처음부터 인간을 로봇으로 만드셨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기 의지를 꺾어야만 하는데 이는 몹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이유가 또 있습니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 바깥의 일을 요구하십니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 나름대로 이해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 범주를 벗어난 일은 언제나 낯설고 두렵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을 얼마나 제대로 파악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수십 년을 한 이불 덮고 붙어사는 부부도 서로의 속마음을 다 알지 못합니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알까요? 직원이 사장의 관점을 다 이해할까요? 동시대, 같은 문화권에 살면서 같은 언어를 쓰는데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범위는 비좁습니다.

길어야 100년 남짓 사는 인간이 영원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을 알면 과연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그분의 뜻을 알아차린다 한들 그것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눈에 보이는 부모 말에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애당초 우리의 능력을 벗어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순종은 놀라운 ‘기회’가 됩니다. 내가 알지 못하던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뜰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상관의 지시에 순종하면 어느새 조직과 업무를 보는 상관의 관점과 시야를 공유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신적인 관점과 시야’를 공유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물 안의 개구리가 드넓은 하늘을 보게 되는 경이로운 경험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자기 세계에 함몰된 채로 살아갑니다. 자기 논리, 자기 경험, 자기 시야, 자기 방식, 자기 연민, 자기 만족. 그렇게 나에게만 끝없이 매몰되어 가는 나를 내 밖으로 끄집어내는 강력한 모멘텀이 바로 순종입니다.

우리는 순종을 통해 나로부터의 구원을 경험합니다. 점점 나밖에 모르는 비좁은 사람이 되어 가는 우리를 크고 영원한 세계로 초청하시는 위대한 부르심, 그것이 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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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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