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문제를 만난다. 그리고 그 문제들이 해결되어 가는 과정을 돌아보면, 그때는 어둡고 보이지 않아 답답하지만 하나님은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 가시는 당신의 손길을 보게 하신다. 나 역시 그랬다.
한국 최초의 고려인학교 설립과 건축에 대한 응답을 받고도 마음 한편은 막막하기만 했다. 응답은 분명히 받았지만, 눈앞에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이 맞는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웠고, 그 응답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도 부담스러웠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평소 인맥이 넓으신 박종필 회장님께 건축 분야의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소개를 받고 통화를 마친 뒤에도 이상하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아직 만나기도 전인데 왠지 모를 불편함이 밀려왔다. 다시 전화번호부를 뒤져 건축사를 소개해 줄 만한 분을 찾아 연락을 시도했고, 발신음이 울릴 때마다 작은 희망을 품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는 믿음으로, 오늘의 만남 또한 그분의 계획 가운데 있는 한 조각일 것이라 생각하며 애써 움직였지만 결과는 허사처럼 보였다.
그날 나는 “응답을 주셨다면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도록 길도 열어 주십시오”라고 반투정 섞인 기도를 드리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퇴직금을 건축헌금으로 드렸던 박성우 집사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집사님께서는 자신의 셀모임에 계신 호서대 건축학과 이윤길 교수님에게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다는 말에 나를 소개해 주셨다. 교수님은 흔쾌히 돕겠다고 하시며 연락처를 전해 주셨다.
아직 만나기도 전이었지만, 통화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만남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미 박성우 집사님을 통해 학교 이야기를 들으신 교수님은 건축학과 신우회에 이 프로젝트 참여를 권하셨고, 여러 학생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다. 건축을 향한 여정이 순식간에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나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렸다.

학교 방문 일정도 빠르게 잡혔다. 그러나 약속이 정해진 후에도 나의 새벽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머릿속으로 그린 도면을 지웠다가 다시 그리고, 또다시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건축비는 얼마나 들까. 어떤 모습의 학교가 세워질까. 그렇게 씨름하며 드리는 새벽기도의 시간은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고도 달콤했다.
이윤길 교수님의 학교 방문은 나의 사역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훗날 돌아보니, 그 모든 과정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안에 있었다. 학교 부지는 길쭉한 형태여서 마치 뱃머리가 있는 방주처럼 보이지만, 기존 건물을 두고 남은 땅만으로 학교를 짓기에는 턱없이 좁았다. 어쩌면 부지의 한계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내 형편을 고려해 현실적으로 맞추다 보니 그랬을 수도 있다. 얼마 후 받아 본 한국 최초 고려인학교의 건축 도면은, 솔직히 말해 내 마음에 깊은 기도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새벽마다 이 학교가 솔로몬의 성전처럼 아름답고, 누가 보아도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건물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도면은 아직 내가 품어 온 기도의 그림과는 너무 달랐다.
그럼에도 나는 재능기부로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준 신우회 학생들과 교수님의 수고가 너무나 고마웠기에 웃음으로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고 계셨다.
이윤길 교수님은 한국 해비타트 충남·세종지부 김종필 사무국장님을 떠올렸고, 우리 학교의 사정을 전했다. 김 국장님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정의 한 획을 잇는 브리지 사명으로 지체 없이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현장을 찾아 나를 만나 주셨다.
나는 김 국장님께 교회로 시작된 사역이 어떻게 학교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그 전 과정을 간증하듯 열정적으로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그분의 마음을 만지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김 국장님의 가슴은 이미 뜨겁게 반응하고 있었고, 이 학교가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학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나를 격려해 주셨다.
그로부터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김 국장님은 다시 이윤길 교수님과 함께 학교를 찾았다. 부지를 함께 살펴보던 중, 현재의 땅 모양으로는 도저히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때 김 국장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여기 좁은 공간에 건축을 한다는 건 좀 무리가 있는데…” 하며 말을 흐렸다. 나도 모르게 “차라리 기존 건물을 모두 헐고 새로 지으면 어떻겠습니까?”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김 국장님은 오히려 “그래야 그림이 나올 것 같습니다”라고 답하셨고, 이윤길 교수님도 기다리듯 자신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며 뜻을 모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김 국장님은 교수님께 뜻밖의 제안을 하셨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다는 전제로 도면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그 도면을 가지고 본부에 제안서를 올려 보겠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기존 건물을 남겨 둔 채 좁은 여백 안에서 무언가를 해 보려 했던 모든 시도는 지워져야 했다. 마치 지우개로 깨끗이 지운 뒤 새 도면을 그리듯,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건축물로 한국 최초의 고려인학교를 세우기로 마음을 모았다.
얼마 후, 이윤길 교수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도면을 보내셨다는 말에, 이전에 한 차례 도면을 보았던 터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메일을 열어 본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뜨거운 눈물로 감동을 대신했다. 울컥했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눈물이 쏟아졌다.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새벽마다 기도하던 그림, 하나님께서 하셨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바로 그 학교의 모습이었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한국 최초 고려인학교의 조감도를 보았다.
김 국장님 역시 그 도면을 보시고 놀랐다. 그러면서 예상 건축비는 족히 30억 원이 넘을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곧이어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라고 담담히 말씀하시며, 본사에 제안서를 올릴 테니 내게는 기도를 부탁하셨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기도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기도는 지금까지 우리를 살게 한 호흡이었고,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분명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 너무나 우둔하다. 그래서 부족한 것이 있으면 기도하면 된다고 믿는다. 그것이 내가 붙들 수 있는 전부였고, 또한 내가 사역을 이어 온 방식이었다. 오늘 결과가 나온다고 하였다.
벨소리는 나의 심장박동수와 같은 리듬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목사님!! 한국 해비타트 본사에서 펀드레이징을 진행해 보라는 총장님의 허가가 떨어졌습니다.”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 국장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목사님을 아주 많이 사랑하십니다. 목사님,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한마디는 내게 또 한 번 가슴 벅찬 은혜로 다가왔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가장 정확한 때에, 가장 필요한 위로의 말로 우리의 마음을 붙드신다. 이제 다음엔 누구를 만나게 하실까?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