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전선 ‘서북산’ 지날 때마다 떠오르는 미군 ‘티몬스’ 부자

나는 오래 전 3년간 경상남도 고성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한 봉우리가 있다.
서울 집에서 근무지로 가려면 마산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간 뒤, ‘신마산 댓거리’에서 ‘고성·충무·장승포’행 시외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그 길은 지금도 내게 하나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험한 고개를 넘어 직행 시외버스가 멈추는 곳이 ‘진동’인데, 이곳을 지나면 왼쪽으로는 바다가, 오른쪽으로는 산줄기가 이어진다.
그 산이 바로 서북산(738.3m)과 여항산(770.5m)이다. 여항산 정상에는 갓처럼 생긴 바위봉이 있어 ‘갓덤’이라 불리고, 오르는 길에는 목마른 등산객을 위한 ‘갓샘’ 표지판도 눈에 띈다.
그런데 이 봉우리는 한때 미군들 사이에서 ‘갓뎀(Goddamn)’이라 불렸다. 6·25전쟁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미 제25보병사단장 킨 장군(William B. Kean)은 진주를 점령하고 마산으로 진출하려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킨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했다. 이는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이 시행한 최초의 사단급 반격작전이었다. 1950년 8월 7일부터 12일까지 이어진 마산 전투에서, 이미 북한군이 선점하고 있던 서북산은 수차례의 혈전을 거쳐 결국 유엔군의 수중에 들었다. 그러나 전투는 그해 8월 말까지 계속되었고, 8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이 고지의 주인은 무려 19차례나 바뀌었다.
서북산에서만 100여 명의 미군이 전사했다. 그 중에는 로버트 티몬스 대위(Robert Lee Timmons)도 있었다. 워싱턴 D.C. 출신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였고, 동갑내기 아내와 결혼해 당시 일곱 살 난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는 서북산 전투에서 전사해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그가 전사한지 4년 뒤, 미망인은 역시 2차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데일리(William Joseph Dailey)와 재혼했다. 아들이 열한 살 되던 해였다. 그러나 아들의 성은 바뀌지 않았다.
아들 리처드 티몬스(Richard Franklin Timmons)는 버지니아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의 길을 택했다. 그는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1994년부터 1997년까지 한국에서 복무했다.
1995년 12월 4일, 그가 한국에 근무하던 시기에 그의 아버지가 전사한 서북산 정상에 전적비가 세워졌다. 정채륭 경상남도 부지사와 하재평 39사단장, 김인규 마산시장, 조성휘 함안군수 등이 차량조차 오르지 못하는 그곳까지 올라 제막식에 참석했다. 당시 미8군 사령관 겸 한미연합사 참모장이었던 리처드 티몬스 장군은 답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보병 중대장으로 한국의 안보를 지키다 전사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북한의 남침을 허용하는 실수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많은 훈장을 받고, 32년간의 군 생활을 마친 뒤 전역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계부는 모두 알링턴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다.
나 또한 아들이 근무하는 곳을 들르는 길이면, 일부러 오래전 내가 근무하던 길을 돌아가곤 한다.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산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그 아버지와 그 아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이 풍경 위에도, 누군가의 삶과 시간이 겹쳐져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