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나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았다. 감독의 의도대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극장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래 전 찾았던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에서 본 문수동자상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1417–1468)가 죄책감에 시달리던 중,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 권씨의 혼백이 꿈에 나타나 침을 뱉는 꿈을 꾸었고, 그 이후 피부병을 앓았다는 전설이다. 역사와 설화는 언제나 교차한다. 나는 문헌을 펼쳐 보았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조는 젊은 시절 강건했으나 42세 무렵부터 잦은 병환을 겪기 시작해, 48세 이후 증세가 심화되었고, 말년에는 정무를 정상적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실록에는 그의 병환이 40여 차례 기록되어 있으나 대부분 “상불예(上不豫)”라는 간략한 표현에 그친다. 다만 세조 10년 4월 16일 기사에는 온천욕의 효험을 언급하며 ‘풍습병(風濕病)’이 등장한다. 전통 의학에서 풍습은 관절통과 마비 증상을 포함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피부 질환까지 포괄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실제로 세조는 온양온천을 여러 차례 찾았고, 온천욕의 효과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흉복통 완화를 위해 현호색을 처방받았다는 기록도 보인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현호색은 기체(氣滯)와 통증을 다스리는 약재다. 흥미로운 점은 세조 스스로 <의약론>을 저술하여 의원의 자세와 의학적 윤리를 논했다는 사실이다. 병을 앓는 군주는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의료 체계를 고민한 정책 결정자이기도 했다.

상원사 문수동자상은 세조 12년(1466)에 조성되었으며, 1984년 복장유물 조사에서 발원문과 함께 왕이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비단 속적삼이 발견되었다. 일부 연구는 이 적삼의 상태를 근거로 세조가 심한 피부 질환을 앓았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2001년 KBS 역사스페셜도 이 문제를 다룬 바 있다.

그렇다면 그의 병은 무엇이었을까. 만성 습진이었을까, 건선이었을까, 혹은 류마티스 질환과 동반된 피부 증상이었을까. 현대 병리학 이전의 시대에는 원한, 인과응보, 저주와 같은 도덕적 해석이 질병 설명의 일부였다. 오늘날 우리는 스트레스가 피부 질환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권력 찬탈과 통치 13년의 긴장 속에서 세조 역시 심리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병의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병을 둘러싼 해석이다.
영화 속 권력자는 인간적 취약성을 지닌 존재로 그려진다. 역사 기록 속 세조 역시 병에 시달린 한 인간이었다. 그는 복약과 침구, 온천욕을 병행했고 때로는 산사를 찾았다. 세조 8년 11월 5일, 상원사 방문 중 관음보살이 현현했다는 기록과 함께 대규모 사면령이 내려진다. 그 기이한 ‘현상’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의 질병과 연관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권력의 정점에 선 군주도 피부의 가려움과 통증 앞에서는 한 명의 환자였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승자의 이름을 남기지만, 실록의 행간에는 가려움과 통증, 불면과 불안이 스며 있다.
우리는 흔히 정의가 역사 속에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역사는 정의의 편이 아닐 때가 많다. 다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피부는 마음의 긴장을 드러내고, 통증은 권력보다 오래 남는다.
상원사 문수동자상의 고요한 미소 앞에서 나는 생각한다. 세조의 피부병이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권력과 양심, 스트레스와 질병이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만은 5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