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사는 아파트의 뒷문은 광교산으로 이어진다. 여름철 산을 오르다 보면 물을 가져갔어도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더 차가운 것이 간절해진다. 그 즈음이면 “아이스케키!”를 외치며 파는 중년의 남자를 가끔 만난다. 어떻게 저 꼭대기까지 가져왔을까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나 사 먹으면 갈증은 금세 가신다.
그런데 어느 날, 홀로 산에 오르다 그가 ‘아이스박스’를 지고 올라오는 모습을 정면에서 보았다. 제대로 된 지게도 아니었다. 박스를 끈으로 엮어 배낭처럼 둘러멘 채 오르고 있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가벼운 배낭에 스틱 하나 쥔 나도 숨이 찼는데, 아이스케키를 가득 담은 상자를 진 그는 쉬는 순간에도 짐을 내리지 못했다. 그대로 암벽에 몸을 기대어 숨을 고른 뒤, 다시 묵묵히 발을 옮겼다.
며칠 전 나는 경북 칠곡의 다부동전적기념관과 낙동강승전기념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사진 두 장이 눈에 들어왔다. 계급장이 없는 군모와 검은 상의 유니폼을 입은 남자들이 지게를 지고 3열 종대로 서 있었다. 등에는 쌀 한 가마니나 커다란 무쇠솥이 얹혀 있어 허리가 자연스레 숙여져 있었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한복 차림의 중년 남자들이 나무상자를 지게에 얹은 채, 총을 멘 군인들을 따라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1950년 7월 26일 창설된 한국노무단, 즉 Korean Service Corps(KSC)이다. 미군은 지게의 모양을 따서 이들을 “The A-Frame Army”라 불렀다. 노무자들은 대대 단위로 배치되어 탄약과 식량을 운반했다. 한 사람이 약 45kg을 지고 하루 16km를 오르내렸다고 전해진다. 유학산 전투에서 국군 1사단 12연대 1대대를 지휘했던 한순화 소령은 “유학산 전투의 절반은 노무자들이 수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회고했다. 전투의 승패는 총을 든 자만의 몫이 아니었다.
나는 얼마 전 ‘한국전쟁 중 입원과 사망의 원인과 숫자’라는 논문을 쓴 적이 있다. 당시 통계를 보면 총 397,519명의 입원 환자 중 92.4%는 국군 장병, 7.6%는 비군인이었다. 사망자 10,141명 가운데 87.9%는 군인이었고 12.1%는 비군인이었다. 입원자의 7.6%, 사망자의 12.1%에 해당하는 ‘군속’ 범주 안에 ‘지게부대, 노무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숫자는 무심했지만, 그 안에는 산을 오르던 사람들의 땀과 숨이 들어 있었다.
1983년 군의관 훈련으로 3사관학교에서 행군을 한 적이 있다. 완전군장을 하고 유격장으로 이동했다. 평지에서는 버틸 만했지만, 산에 오르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군장을 멘 채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우리는 건강을 위해 이 산을 오른다. 누군가는 생업을 위해 오른다.

그리고 오래전 누군가는 탄약과 식량을 지고, 또 누군가는 철모와 총을 들고 이 길을 올랐다. 같은 경사, 같은 바위, 같은 바람. 다만 어깨 위에 얹힌 무게만이 달랐을 뿐이다.
산은 아무 말이 없지만, 그 길 위에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발자국이 겹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