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칼럼

달은 젖지 않는다

얼마 전 영화 ‘왕의 남자’를 보고 나오며 문득 소헌왕후를 떠올렸다. 단종의 할머니이자 세조의 어머니였던 소헌왕후(1395–1446). 만약 그녀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토록 비극적인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역사는 늘 한 사람의 부재 위에서 방향을 틀기도 한다.

엊그제는 대보름이었다. 점심에는 오곡밥이 나왔고, 응급수술을 마치고 나오며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둥글어야 할 달이 구름에 가린 듯 초승달처럼 이지러져 있었다. 그저 구름이겠거니 했는데, 집에 돌아와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고서야 그것이 월식이었음을 알았다. 내가 본 것은 가려진 달이 아니라 스스로 그림자를 드리운 달이었다.

세종에게 헌신적이었던 소헌왕후는 피접 중이던 수양대군의 사저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들 수양이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어 올린 책이 <석보상절>이고, 이를 읽은 세종이 그 뜻과 문장에 감동하여 각 구절마다 찬가를 덧붙인 것이 <월인천강지곡>이다. 이 노래는 훗날 <월인석보>의 첫머리에 실리며 이렇게 말한다.

부처가 백억 세계에 화신하여 교화하심은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비치는 것과 같다고. 달은 본체요, 강물에 비친 그림자는 화현이다. 하나의 빛이 무수한 물결 위에 나뉘어 드러나되 그 본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달빛이 물 위에 스미는 장면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2004년 가을, 원주에서 회의를 마친 어느 금요일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나는 혼자 강릉으로 향해 바다가 보이는 여관에 묵었다. 난간에 기대어 보름달을 보았고, 그 달빛이 바다에 길게 번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음 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어느 절에서 한 노승이 ‘무염영(無染影)’을 설하는 것을 들었다. 경상도 억양이 또렷했다.

“달 그림자는 연못에 잠겨도 물에 젖지 않는 기라. 똥에 닿아도 똥에 묻지 않는 기라….”

그 말을 동료 의사에게 전한 적이 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바로 그 물이고, 또 그 똥이지요….”

과학이 발달한 지금, 달빛은 천 개의 강물에만 머물지 않는다. 모든 중생이 하나씩 들고 있는 휴대전화의 렌즈를 통해 억조창생에게 동시에 전해진다. 이를테면 ‘월인억강(月印億江)’이라 해야 할까.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강을 건너지 못한 채 서 있다.

달 그림자는

물에 빠지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는데

내 그림자는

빠져 허우적거리고

그 자리에서 맴돌 뿐.

이른 새벽 병원에 도착해 어제 수술한 환자의 엑스레이를 확인했다. 골절 부위에 삽입한 핀은 정확히 제자리에 있었다. 부러진 뼈는 시간이 지나야 붙겠지만 적어도 어긋난 것은 바로잡혔다.

달은 물에 비치되 물에 물들지 않는다 했다.

나는 아직 젖어 있지만 그래도 오늘은 달그림자처럼 제 자리를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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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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