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사회

[소학섭의 고려인청소년이야기⑱] 이들의 꿈을 키워 함께 이뤄갈 마음들을 찾으니…

쉬는 시간이 되면 교실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된다. 남녀 화장실이 한 칸씩뿐이라 아이들은 줄을 서고, 기다리지 못한 아이들은 수업 중에도 들락날락한다. 5~6평 남짓한 교실은 책상과 의자를 빼곡히 넣고 나면 숨조차 답답하다. 창문을 열어도 공기가 막힌 듯한 콩나물시루 같은 공간. 그 안에서 아이들은 꿈을 키우고 있었다.

‘조금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처음엔 그 마음 하나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리모델링이었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단순한 보수가 아니라는 생각. 결국 그것은 ‘리모델’이 아니라 ‘학교 건축’이라는, 훨씬 크고 무거운 비전으로 다가왔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아이들을 보내 주신 이유를 찾은 것이 건축이었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쏟게 하시고, 이렇게까지 부어 주시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새벽 기도 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우둔한 나는 눈물만 많아졌다.

얼마 전 아내의 학교 건축을 위한 로뎀나무 물 붓기 2천만원과 박성우 집사님의 5백만원은 나에게는 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두려움이 나를 작아지게 했다. 나는 과연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나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물 붓기 금액에 따라 로뎀나무 현황판에는 이름이 새겨졌다. 명찰, 잎사귀, 열매, 꽃, 왕관, 다이아몬드…. 나무가 점점 채워질수록 우리의 꿈도 조금씩 자라나는 것 같았다. 선생님들이 이름을 올렸고, 아이들도 조심스레 자신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유리는 조용히 500달러를 내밀었다. 그 돈은 카자흐스탄에 돌아가 생활해야 할 생활비였다.

그때 유리가 찾아왔다. 비자가 만기되어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유리는 조용히 500달러를 내밀었다. 그 돈은 카자흐스탄에 돌아가 생활해야 할 생활비였다. 주말마다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을 환전한 것이었다. 보통 아이들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늘 묵묵히 내 말을 따라주던 청년. 카메라 영상을 공부하고 싶어 했던 청년. 그러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당시 26세), 대학 진학을 위한 학적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꿈을 내려놓아야 했던 듬직한 청년이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려 해도 가정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그 돈을 받으며 마음이 무너졌다. 기특함과 미안함, 그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픔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유리의 이야기는 아이들 사이에 퍼졌고, 아이들은 부모님께 전했다. 그러자 부모님들까지 로뎀나무에 이름을 새기기 시작했다. 작은 씨앗 하나가 공동체 전체를 흔들어 놓은 것이다.

본격적인 ‘물 붓기’를 생각했다. 지혜를 구했다. 학교건축은 우리만의 꿈이 아니라, 한국에 이주해 온 10만 명이 넘는 고려인들의 소망이 되길 바랐다. 로뎀나무에 물을 붓는 이 작은 운동이 아이들의 마음에도 잔잔히 번져가길 기도했다. 부담이 아니라, 소망의 잔치가 되기를 바랐다. 나에게 스치듯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매년 가을, 우리는 학교 축제를 연다. 200명이 넘는 내빈, 아이들의 친구들, 학부모가 모이는 날이다. 1년 동안 배운 것을 토대로 연극과 중창, 발표가 이어지고, 교정에는 웃음과 박수가 넘친다.

나는 생각했다. ‘이 자리가 바로 비전을 나누는 마당이 되겠구나.’ 작년까지는 볼거리 중심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먹거리를 더했다. 선생님들은 공연을 준비했고, 먹거리는 아내에게 부탁했다. 식자재 준비는 아내가 또 감당해 주었고 아이들은 먹거리 요리를 맡았다. 스베타와 옥사나는 카운터에서 쿠폰을 팔았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웃음을 터뜨리던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홍보였다. 사람들은 웃으며 지갑을 열었다. 드르와 알렉산더, 신콘스탄틴은 바비큐를 맡았다. 논 한가운데 자리한 우리 학교에서 종종 아이들과 구워 먹던 그 고기 냄새가 교정을 가득 채웠다. 연기와 웃음소리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매출은 점점 올라갔다.

이번 축제는 달랐다. 고려인 아이들이 직접 자신의 끼와 열정을 담아, 학교를 위해 무대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목적 홀에서는 1년 동안 배운 한국어로 다양한 학예회가 펼쳐졌다. 부모님들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빛났다.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낯선 이 땅에서, 자신들은 힘들어도 자녀만큼은 한국인으로 당당히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같은 처지의 부모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서 있는 모습이 왜 그리 짠하게 다가오던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날, 높아진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다짐했다. 반드시 한국 최초의 고려인학교를 세우겠다고.

축사로 오신 한국외국어대학교 임영상 명예교수님은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는 고려인 동포의 한국사회 정착을 위해 꼭 필요한 곳”이라며 힘을 실어 주셨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여러 내빈들의 응원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논 한가운데 작은 십자가가 있는, 겉으로는 작고 초라한 학교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날갯짓하는 비전이 있고, 이를 악물고 버텨내는 아이들이 있다. 솔직히 나는 외부 활동을 잘하지 못한다. 이런 기관을 운영하려면 사회성도 좋아야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적극적으로 알리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너무 어렵다. 그래서 건축을 위한 물 붓기가 더디게 느껴질 때면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하나님께도 죄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렇게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는 것. 그 자리에 성실히 서 있는 것.

내일도, 작지만 멈추지 않고, 로뎀나무 건축을 위한 물을 붓겠다. 두려움보다 소망이 더 크도록. 부담보다 기쁨이 더 크도록. (계속)

필자 소학섭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이사장 겸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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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섭

(사)청소년미래연구 이사장,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이사장 겸 교장, 다문화전문가 2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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