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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기자협회 회원인 이란의 알리레자 바라미 기자가 해외 인터넷 접속이 약 200시간 만에 부분적으로 재개된 직후인 2026년 1월 19일 새벽에 글을 보내왔습니다. 필자는 장기간의 통신 차단과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과거와 현재 시위의 차이점과 배경 등을 분석했습니다. ‘아시아엔’은 현지 언론인의 시각을 담아 이란 시위를 둘러싼 복합적인 현실을 정확하고 포괄적으로 전합니다. -편집자
[아시아엔=알리레자 바라미 이란 ‘아스레 로우샨’ 편집장] 이란의 해외인터넷 접속이 200여시간 만에 부분적으로 재개됐다. 이에 아시아엔 독자들과 아시아기자협회(AJA) 동료들에게 이란의 현 상황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쓴다.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나는 기자로서 이란의 상황을 전세계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책임이 있다. 내가 위험에 처하게 될지라도 말이다. 또한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믿고 기다려준 이상기 아시아엔 발행인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앞서 지난 1월 8일 그에게 “오늘 밤이나 내일 오전까지는 원고를 보내겠다”고 말한 지 몇시간 후 인터넷이 차단되면서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됐었다. 이 같은 상황이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연락이 닿을 때 원고를 전달하고자 했다.
해외의 독자들은 이란의 현 상황이 매우 위급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멀리서 언론 보도를 통해 소식을 접하는 경우 실제 상황보다 다소 과장되기 마련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모든 소통이 차단된 상황 속에 일부 언론이 추측성 보도를 내놓으면서 논란이 더욱 확대됐다. 나는 수십년 간 모든 일들을 직접 경험해온 언론인으로서 이 사태를 보다 정확하고 포괄적으로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란 경제, 이란 대통령 또는 미국 대통령에 좌우
시계를 잠시 과거로 돌려보자. 1997년 ‘문명 간 대화’를 주창한 모하마드 하타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란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2005년 우파 성향의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가 집권하면서 이란은 다시금 후퇴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핵합의(JCPOA)를 체결하면서 국제사회와의 관계가 개선됐지만,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2024년 이란은 국제사회와 소통하고 전쟁을 막기 위해 마수드 페제시키안이라는 온건 개혁파 대통령을 선택했으나, 2025년 6월 이스라엘은 결국 이란을 침공했다.
이란의 대외관계와 국가경제는 매우 연관성이 높다. 국제관계가 개선될 때마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이 나아진 반면, 국제관계가 격화될수록 국민의 삶도 나빠졌다. 미국의 경제 제재가 폐쇄적인 이란 정부에 적지 않은 압박을 가한 것은 사실이나, 최대 피해자는 이란의 국민들이었다.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강압적인 정부와 자유를 바라는 국민 사이의 갈등이 고조돼 왔으며, 특히 세대 간의 간극이 더욱 깊어졌다.
이란 석유·경제 제재 둘러싼 안팎의 적
이란은 지난 120여년간 석유 자원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었다. 이란 시위대를 지지한다고 자처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서 ‘자유’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미국의 국익’을 추구할 뿐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면서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원한다”는 점을 명확히 나타냈다. 이란은 막대한 석유·가스 자원뿐 아니라 풍부한 광물 자원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자원 만으로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국민들의 자유보다 이란의 자원을 중요시 여긴다는 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외세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제 구조에선 부패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외국의 제재를 악용한 기득권층은 국민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다. 실제로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비밀리에 석유를 판매하고 자금을 이전해온 조직들의 행태가 밝혀지고 있다.

구조조정 명분 ‘환율개혁’, 시위의 불씨 피웠다
2024년 우파 대통령이 헬기 사고로 사망한 직후 출범한 좌파 성향 정부는 새 회계연도(페르시아력은 봄에 시작) 예산안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근절시키기 위해 환율개혁에 나설 것이라 발표했다. 그러나 환율 불안에 따른 통화가치가 하락하면서 상인들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시위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성직자들 역시 종교 플랫폼과 국영 채널 등을 통해 시위를 지지했다. 서로 다른 계급이 시위에 함께 나서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이란 사회는 작은 불씨 하나만 있다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화약고나 다름없었다. 국민들은 반복되는 경제난에 지쳐 있었고, 정부와의 갈등의 골도 너무나 깊었다. 기자로서 지난 26년간 이란에서 다섯 차례의 대규모 시위를 목격해왔다. 각각의 시위에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었지만, 이번 시위는 과거와는 다소 상이하다.
가장 직전인 3년 전의 대규모 시위와 비교해보자. 이번 시위는 소도시에서 불길이 먼저 타올랐다. 대학생이 아닌 시장의 상인들(주로 전자제품 수입상)이 주도했으며, 예술계 대신 체육계가 전면에 나섰다. 여성들이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시위를 주도하진 않았다. 시위대의 구호와 요구 역시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경제 개혁을 우선시했다. 이는 상인층이 시위의 시발점이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일견 타당해 보인다. 이번 시위가 1979년 이란혁명 직전의 상황과 유사한 양상으로 흐른다는 점도 특이하다.

지난 20년간 이란 정부는 언론의 기능을 점점 축소해왔다. 이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일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 지원을 받는 페르시아어 해외 언론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차례의 시위 국면에서 해외에 기반을 둔 언론사들은 시위 관련 영상을 지속적으로 송출해 왔고, 최근 들어서는 소셜미디어와 연계하면서 영향력을 더욱 확대했다. 이는 더 많은 시민들이 시위에 합류하는 촉매제가 된 반면, 이란 당국이 2026년 1월 9일 목요일 저녁 해외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게 된 배경이 됐다. 이란의 마지막 왕조인 팔레비 왕세자가 “1월 9일과 10일 밤 8시에 국민들은 거리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 점도 이란 당국의 인터넷 차단을 부추겼다.
이번 시위는 초창기만 해도 평화적으로 진행됐으며, 이란 정부도 민생과 직결된 시위인 점을 감안해 다소 느슨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질되며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양측의 공방도 격해졌다. 양측은 상대방을 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책임을 떠넘겼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는 그들을 지지하는 미디어 플랫폼을 차단당했고, 정부는 언론을 통제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확산시켰다. 일례로 정부는 아직까지 공식 사망자수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시위를 지지하는 언론과 해외 언론들은 시위 과정에서 최소 수천 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가용자원 측면에서 이란 정부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시위대는 외부의 도움에 기대를 걸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계속하면 도움이 찾아올 것”이라는 발언 등은 시위대에 큰 힘이 됐다. 그러나 트럼프는 협상에 능한 사업가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아랍권 국가들과 이스라엘은 트럼프 행정부에 “이란 공격을 자제하거나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이란 정부는 군사 공격이 있을 경우 미군 기지와 이스라엘을 타격하겠다고 대응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측면을 고려할 때 미국의 군사 공격 가능성이 점차 낮아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란 정부도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현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목숨을 갉아먹는 소모전의 장기화다. 이는 이란 사회에 또다른 환멸을 낳고, 젊은 세대의 해외 이주를 부추길 공산이 크다. 물론 모든 전망을 뛰어넘는 예측불가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란 국민들은 깊은 우울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천 명의 희생은 사회 전반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요즈음 이란 국민들은 “우리 집 위에만 구름이 떠 있다”는 어느 시인의 문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폭풍이 다가올 것인가? 그렇다면 어느 방향에서 올 것인가? 강대국들의 다툼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향한 국제질서의 재편인가? 이란인들의 가장 큰 관심은 단 하나, 그들의 ‘집’이다. 평화롭게 번성하는 집을 꿈 꾸지만 그 누가 이를 가능케 할 것인가?
아시아엔 영어판: My House Is a Cloud! – THE As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