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미국 이민 1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한인사회의 현재를 성찰하고, 향후 60년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 내 유대인 사회와 한인사회를 비교한 분석 칼럼입니다. 필자는 교육, 종교, 정치 참여, 리더십, 기억의 관리 방식 등 다양한 영역에서 두 공동체의 차이를 짚으며, 한인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냉정하게 드러냅니다. 특히 이 글은 미국의 한인사회와 유대인 사회를 비교한 글로, 한인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되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한 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개인의 성공을 넘어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적 질문을 독자에게 던집니다.<편집자>
[아시아엔=주동완 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 1903년 갤릭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초기 한인들은 모진 환경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과 건국을 위해 헌신하며 한인 사회의 기틀을 형성했다. 그로부터 약 60년이 지난 1965년, 미국의 이민법 개정 이후 물밀듯 이주해 온 한인들은 지난 60년간 조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기여하는 한편, 미국 각지에 코리아타운을 형성해 왔다. 이제 앞으로의 60년 동안 한인들은 어떻게 한인 사회, 즉 코리아타운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이에 미국 내 유대인 사회와의 비교를 통해 한인 사회의 미래 발전 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미국 내 유대인 사회의 성공은 흔히 부와 권력, 강력한 네트워크로 설명된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한 강점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 문서와 제도, 문화로 축적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는 점에 있다. 반면 미국 한인 사회는 눈부신 개인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 성취가 공동체의 구조로 남지 못한 채 흩어질 위험 앞에 서 있다. 이제 미국 한인 사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성공한 이민 사회인가, 그리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인가.”
유대인 사회에서 교육은 개인의 출세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 생존을 위한 책무에 가깝다. 탈무드 전통에서부터 현대 유대인 데이스쿨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핵심은 “누가 더 잘되는가”가 아니라 “누가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가”에 있었다. 지식은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산이었고, 교육은 그 자산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한인 사회의 교육열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그 에너지는 거의 대부분 개별 가정의 경쟁 전략으로 소모된다. SAT 점수와 명문대 진학, 전문직 진출은 자랑스러운 성취이지만, 그 성취가 공동체로 환원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 결과 2세, 3세로 갈수록 한인 정체성은 희미해지고 개인만 남는다. 교육이 개인 출세의 사다리로만 작동할 때, 공동체는 세대 교체와 함께 해체된다.
종교기관의 역할에서도 두 공동체의 차이는 뚜렷하다. 유대인 회당은 단순한 예배 공간이 아니다. 복지와 교육, 정치 정보와 위기 대응이 결합된 공동체 운영의 핵심 인프라다. 신앙은 사회적 역할과 분리되지 않는다. 반면 한인 교회는 규모와 헌금 면에서 강력한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내부 신앙 문제에 에너지를 소진해 온 측면이 있다. 이민 정착 지원, 청년 멘토링, 시민 참여와 같은 기능은 상대적으로 부차적이다. 교회가 커질수록 공동체와 오히려 단절되는 역설이 반복된다. 교회가 신앙 공동체에 머무를 때, 공동체는 그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
기억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차이는 분명하다. 유대인 사회는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을 감정의 언어가 아닌 기록·교육·정책의 언어로 관리해 왔다. 기억은 동정을 호소하는 도구가 아니라,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반면 한인 사회의 기억은 여전히 분노와 피해의 언어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LA 폭동, 위안부 문제, 이민 차별의 경험은 반복해서 소환되지만, 체계적인 기록과 교육, 정책화는 충분하지 않다. 기억이 기록으로 남지 않을 때, 그것은 다음 세대에게 방향 없는 감정만을 남긴다.
정치 참여 역시 마찬가지다. 유대인 사회는 특정 정당의 하위 집단으로 머물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의제 중심의 정치 참여를 구축해 왔다. 시민권, 종교의 자유, 반차별은 시대와 정당을 넘어 유지되는 공동체의 핵심 목표다. 반면 한인 사회에서 정치 참여는 여전히 개인의 성향이나 일시적 분노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투표율은 낮고 정책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정치가 선택 사항으로 남아 있는 한, 공동체는 언제나 정책의 대상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리더십 구조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유대인 사회의 힘은 특정 유명 인물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다. 정치, 법조, 학계, 미디어 전반에 분산된 대체 가능한 리더십 시스템이 작동한다. 반면 한인 사회는 여전히 소수 인물에게 기대를 거는 경향이 강하다. 개인이 흔들리면 구조 전체가 함께 흔들린다. 성공을 대하는 태도 또한 결정적이다. 유대인 사회에서 성공은 곧 책임이다. 기부와 멘토링, 네트워크 공유는 미덕이 아니라 규범에 가깝다. 성공은 개인의 종착점이 아니라 공동체로 다시 환원된다. 반면 한인 사회의 성공은 존경받지만, 대부분 개인의 이야기로 끝난다. 공동체로 환원되지 않는 성공은 다음 세대를 위한 자산이 되지 못한다.
조직 구조에서도 한인 사회는 취약하다. 단체는 많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반면 유대인 사회는 완벽한 통합을 지향하지 않으면서도, 조정 가능한 연합 구조를 통해 갈등을 관리하고 대응력을 유지한다. 차별에 대한 대응에서도 감정과 시스템의 차이가 드러난다. 유대인 사회는 반유대주의에 즉흥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법률, 미디어, 교육 매뉴얼이 이미 준비되어 있다. 한인 사회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분노로 대응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는다. 미디어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유대인 미디어는 공동체 소식을 넘어 정책과 담론을 생산하는 공론장으로 기능한다. 반면 한인 미디어는 여전히 행사와 광고 중심의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이 다르다. 유대인 사회는 “얼마를 벌었는가”를 묻지 않는다. 투표율, 교육의 지속성, 리더십의 재생산 여부가 공동체의 성과 지표다. 반면 한인 사회는 여전히 개인의 소득과 직업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결국 문제는 이것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유대인 사회는 특별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공동체가 의식적으로 전략을 세우고 대응했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었다. 미국 한인 사회 역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성공한 개인들의 집합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설계된 공동체로 전환할 것인가.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유지되지 않는다. 설계되고 기록될 때만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이제 미국 한인 사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얼마나 성공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 유대인 커뮤니티의 전략은 모방의 대상이 아니라 참고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