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파악하고 그 패턴을 분석해서 보이지 않는 법칙을 추론합니다. 패턴의 반복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원리를 발견하는 것은 지극히 과학적인 접근법입니다.
그렇기에 기독교 신앙은 충분히 과학적 접근이 가능한 영역입니다. 기독교의 역사야말로 방대한 임상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 수천만, 수억 명의 사람들이 삶 속에서 보여 왔던 반복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인종과 문화, 시대와 계층을 초월하여 동일한 고백을 하며 삶이 뒤바뀐 수많은 케이스가 존재합니다. 이 방대한 데이터를 무시한 채, 신앙을 그저 심약한 사람들이 찾는 현실 도피처라 여기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결론일까요?
19세기 말, 조선 땅을 밟았던 서구의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엘리트였고 본국에서 안정된 미래와 부가 보장된 이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지도에서조차 찾기 힘든 작은 나라에 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항해 도중 죽음을 맞이하거나 조선 땅을 밟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풍토병으로 자녀를 잃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들은 정신이상자들이었을까요?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토록 ‘비합리적’ 선택을 하게 만들었을지에 대한 ‘합리적’ 판단이 필요합니다.
과연 외계인이 존재할까요? 무한에 가깝게 광활한 우주를 보며 그곳에 지구와 같은 행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보다 어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기에 사람들은 외계인의 존재 가능성을 거론합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 속에 수많은 증인들이 남긴 흔적을 보면서는 어떻게 그토록 쉽게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까요?
무신론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데이터를 무시해야 합니다. 모든 증거를 애써 부정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릅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무시한 채 어떠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야말로 현대인이 그토록 경멸하는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 태도 아닌가요? 어쩌면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믿기 싫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과연 무신론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러기엔 부정해야 하는 사실이 너무 많습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속이며 자기 최면을 걸지 않는 이상 도달하기 어려운 결론이 무신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