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후 1:6)
나의 경우든 타인의 경우든 인생에서 마주하는 원인 모를 고난에 대한 가장 쉬운 풀이는 ‘인과응보’입니다. 인과응보라는 이 단순하고도 명확한 도식 속에서 고난은 ‘죄 때문에 받는 처벌’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불행을 과거의 잘못과 연결 지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는 질문은 뼛속 깊이 각인된 종교심에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사람이 죄책감의 늪에 빠지면 과거의 죄를 청산하고 현재의 고통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교는 바로 이 부분을 공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불안에 떠는 영혼들을 위해 ‘맞춤형 과거 청산 면죄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합니다. 그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사람들은 어느새 ‘죄 비즈니스’의 충성스러운 고객이 됩니다. 인간 내면의 불안이라는 고갈되지 않는 무한 자원을 권력화하고 자본화하는 것, 이것이 타락한 종교가 사람들의 불행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당한 고난과 환난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고 있을까요? 그는 살 소망이 끊어진 절망의 밑바닥에서 놀라운 진실을 하나 깨닫습니다. 그것은 시련을 당해 망신창이가 된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신비로운 일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디어 냅니다.”(고후 1:6, 새번역)
이것은 인과응보의 논리를 역행하는 고백입니다. 내 고난의 이유가 ‘과거의 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위로’에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혹독한 고난은 훗날 나와 똑같은 아픔을 겪을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재료입니다.
하나님은 그 재료를, 우리의 고통을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고난과 낙심 속에 버려두고 계시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숙성의 시간입니다. 벌을 받거나 죗값을 치르는 중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준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의 이유가 과거에만 있지 않습니다. 고난의 이유는 미래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일단 살고 볼 일입니다. 어려운 시간을 하나님 안에서 견디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그 삶은 누군가를 향한 위로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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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3k9j_Y_c_4?si=3J2rqRZxN5W6G1b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