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5월, 밤이면 광장은 붉은 촛불의 바다였다. 가로수가 꺾여 장작불이 되고, 쇠파이프를 든 젊은이들이 경찰 버스를 공격했다. 버스 위의 경찰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었다. 미국산 소고기만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방송을 듣고 시민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사람들은 소고기 수입 협상 대표를 ‘친일파’로 몰아 광장에서 화형식에 처했다.
광란의 밤이 지난 새벽, 나는 광장으로 갔다. 격변하는 역사의 현장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곤 했다. 시청 앞 광장에는 수많은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사이로 눈에 확 들어오는 조형물이 있었다. 두 발로 허공을 차고 있는 미친 소의 형상이었다. 붉게 충혈된 눈이 나를 죽일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텐트 사이를 걸었다. 열려 있는 텐트 안에 있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에서 원인 모를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거기서 숙식을 해결하며 시위를 하는 걸 보면 대단했지만, 그 살기가 나를 섬뜩하게 했다. 광장은 법이 미치지 않는 구역 같아 보였다.
텔레비전 뉴스가 전광판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도 광화문 일대에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촛불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앵커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화면이 바뀌었다. 다른 방송이었다. “평화로운 촛불 문화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들도 보입니다.” 같은 현장인데,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또 다른 뉴스 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발표 예정.” 화면에 흑백 사진들이 나오고 있었다. 무용가, 화가, 음악가. 그들의 얼굴 위로 붉은 글씨가 떴다.
‘친일파.’ 그리고 그의 사진이 나타났다. 신현확. 뒷짐을 지고 서 있는 노인.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이었다.
1년 전이었다. 2007년 4월 26일, 서울대학교병원 영결식장. 남덕우 전 총리의 조사가 시작됐다. “우리나라 개발연대의 중심에서 조국 근대화에 헌신하셨던 고인을 보냅니다. 신현확 총리는 오늘날 한국 경제의 산파이셨습니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신현확 총리의 외아들 신철식을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로 지내왔다. “아버지가 마지막에는 혼수상태에서 섬망이 오셨는지 이상한 소리를 하셨어. 생각이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상황으로 돌아가셨는지 ‘사단장 바꿔라! 거기서 부대 이동을 멈춰라!’ 하기도 하고, ‘저놈들이 나를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며 이런 짓을 한다’고 소리치기도 하셨어. 어떤 때는 일제강점기 도쿄에서 폭격을 받던 상황이나 6·25전쟁 당시로 돌아가기도 하셨어.”
2008년 5월.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신현확의 사진이 다시 나타났다. “제국주의에 적극 협력해 우리 민족에게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끼친 자를 대상으로…”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가 말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모은 성금으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할 것입니다. 친일파가 정리되어야 우리 민족정기가 바로 섭니다.”
그 명단에 신현확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었다. 1년 전에 돌아가신 분이다. 그때는 애국자라고 했다. 그리고 국립현충원에 모셨다. 그런데 그를 친일파로 영원히 명단에 올린다는 것이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신철식이었다.
“이 새끼들이 우리 아버지를…” 목소리가 떨렸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내가 끝까지 싸울 거야. 도와줘.” “알았어. 만나자. 어디서 볼까?” “시청 앞 빌딩 지하 다방. 한 시간 후.”
1970년 여름, 경기고등학교 1학년 교실.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노란 양은도시락을 꺼냈다. 신김치 몇 조각과 오징어채 한 덩어리, 딱딱하게 굳은 흰밥. “도시락 바꿔 먹자.” 옆자리 신철식이 말했다. 그의 도시락에는 계란부침과 소시지, 고기볶음이 있었다. “진짜?” “응.”
신철식이 내 도시락을 받아 흔들었다. 김치 국물이 밥에 스며들었다. “이렇게 비비는 게 더 맛있어.” 그날 이후, 그는 매일 교문에서 나를 기다렸다. 한일관에서 불고기를 사주고, 어떤 날은 중국음식점에서 탕수육을 샀다. 미안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느 날 저녁, 기사가 모는 검은 승용차가 우리 동네 큰길가에 멈췄다. 생물공책을 빌려간다며 철식이가 보냈다는 것이다. 처음 타본 고급차의 가죽시트가 부드러웠다. 동빙고동 저택. 잔디 정원 너머 삼층 건물이 보였다. 판자집이 다닥다닥 붙은 낙산 아래가 우리 집이었다.
“야, 이게 집이 맞아?” “응, 그냥 집이야.” 지하 홈바에 샹들리에가 반짝였다. 원목 장식장에 양주병들이 가지런했다. 그날 나는 알았다. 세상에는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더 중요한 것도 알았다. 신철식은 내 신김치 도시락을 흔들어 먹던 그대로였다.

나는 시청 앞 프라자호텔 빌딩 커피숍으로 가고 있었다. 변호사로서 신철식의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신철식이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 얼굴이 새까맣게 타 있었다. 평소 온화하던 친구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나는 맞은편에 앉았다. 웨이터가 커피를 가져왔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우리 아버지를 친일인명사전에 올린다는 거야.” 신철식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인간 쓰레기통에 아버지를 쳐 넣겠다는 거지.”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왜 친일파래?” 내가 물었다. “아버지가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고 사무관으로 근무했다는 거야. 지금으로 치면 행시 합격자를 친일파로 모는 거지.” 그가 주먹을 쥐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과 만났어. 일제강점기 일본 경찰이 아버지를 수배했다고 설명했지. 그런데도 친일파래. 말도 안 돼.” 커피숍 창으로 광장이 내려다보였다. 구호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그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 모든 시간이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을까. 사무실로 돌아가 싸움을 준비했다. 신현확이라는 인물의 일생을 지켜내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