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칼럼

부재는 존재의 완성…”탯줄 잘리며 엄마와의 첫 단절, 그것은 ‘죽음’ 아닌 ‘호흡’의 시작”

인생은 떠남의 연속 아닌가요?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을 떠나면서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탯줄이 잘리며 경험한 어머니와의 첫 단절.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호흡의 시작이었습니다. 사춘기에 겪는 폭풍은 자녀를 부모의 세계 바깥으로 안내하곤 합니다. 결국 한 인간은 부모로부터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영적 떠남을 경험하며 독립된 인격체로 서게 됩니다.-본문에서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한복음 16:7)

늘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되도록 빨리 떠났으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겪는 아이러니는 늘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너무 빨리 떠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얘기를 꺼내실 때면 못 들은 체하거나 예수님의 떠남을 만류했습니다.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적으로 의지하는 이의 부재가 어떻게 유익할 수 있을까요?

제자는 스승이 떠나야 비로소 스승의 가르침대로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스승이 곁에 있는 동안은 모든 것이 연습일 뿐입니다.

인생은 떠남의 연속 아닌가요?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을 떠나면서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탯줄이 잘리며 경험한 어머니와의 첫 단절.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호흡의 시작이었습니다. 사춘기에 겪는 폭풍은 자녀를 부모의 세계 바깥으로 안내하곤 합니다. 결국 한 인간은 부모로부터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영적 떠남을 경험하며 독립된 인격체로 서게 됩니다.

성도의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당을 떠나며 삶의 예배가 시작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떠남이란 완전한 결별이나 차단이 아닙니다. 자립입니다. 도리어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하면 비정상적 유착이 시작됩니다. 탯줄이 잘리지 않은 아기, 스승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제자, 부모의 품을 떠나지 못하는 자녀에게 ‘성숙’이란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자립한 존재만이 다른 존재와 건강한 관계를, 긴밀한 연결을 경험합니다. 독립된 개체만이 연합을 이룹니다.

예수님의 지상대명령,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일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야만,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야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떠남은 결코 단절과 결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떠나시겠다 말씀하신 그 자리에서 가장 놀라운 약속을 함께 주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이 우리를 떠나셔야 우리와 진정으로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존재는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지만 부재는 시공간을 초월합니다. 이것이 바로 보혜사 성령의 독특한 위치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는 예수님의 부재의 영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하게 예수님의 존재감을 증거하는 영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부재를 통해 임재를 완성하셨습니다.

잠깐묵상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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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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