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행기표를 보냈으니 이번 달 30일에 한국으로 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전해진 아버지의 단호한 목소리였다. 갑작스러운 한국 이주는 친척집이나 조부모와 함께 살던 아이들에게 정서적·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다. 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까지는 아니더라도, 교실에서 종종 물었다. “언제 부모님이 한국으로 이주하라고 하셨니?” 놀랍게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이주했다고 답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깔깔 웃거나, 푸념처럼 각자의 경험담을 털어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고려인학교를 설립하고 나서 가장 자주 한 말은 “꿈을 꿔보라, 꿈을 위해 노력하라, 그리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꿈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보다 더 거센 소용돌이 속에 선 아이들에게는 메아리조차 되지 못했다. 고려인 청소년들은 출신국에 따라 체류 신분이 달랐고, 이주 경로에 따라 더 큰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한국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여행만 가더라도 많은 준비가 필요한데, 이들은 고향 친구의 따뜻한 포옹조차 나누지 못한 채 이주했다.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낯선 출발선 앞에서, 그들에게 세상은 “준비할 틈도 없이 적응하라”고 윽박지르는 듯했다. 나는 그 아이들을 위해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가 ‘한숨 속의 꿈터’로 존재하길 바랐다. 언젠가 고려인 아이들이 웃을 날을 기다리며, 그들을 다독였다.

오늘은 그동안 수고한 서현이, 영광이, 제니, 유리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들은 내가 학교를 세운 후 꾸준히 지도해온 인턴이자 리더들이다. 힘들었던 학기 말에 약속한 1박 2일의 위로 여행이었다.
서현이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열정과 재능이 뛰어나다. 본래 이름은 알리나(ALINA)인데, 나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 달라 하여 ‘서쪽의 별처럼 빛나라’는 뜻으로 서현이라 이름 지었다. 영광이는 손재주가 많고, 기타 연주와 컴퓨터 실력이 뛰어나다. 학교 방송장비도 능숙하게 다룬다. 제니는 독립운동가 할아버지의 후손으로 한국 국적을 받았으며, 언제나 큰 목소리로 “네, 목사님!”이라 대답하는 밝은 학생이다. 유리는 가장 나이가 많고, 유도를 배워 “목사님을 지켜드릴게요”라며 군기반장 역할을 맡고 있다.
나는 이 인턴들에게 조금 특별한 여행을 선물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비전을 스스로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충주를 거쳐 청평과 단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는 러시아 음악을 크게 틀고, 충주 중앙탑 근처에서 막국수와 치킨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날려보냈다. 아이들 덕분에 나는 행복했고,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가 앞으로 글로벌 인턴으로 가득 차 세상으로 나아가리라는 믿음이 더 단단해졌다.

저녁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현이는 아토피로 고생하는 오빠와 함께 사는데, 어려운 형편 탓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고 했다. 처음엔 미성년자 동거비자(F1)로 체류하며 불안했지만, 지금은 F4 비자를 받아 안정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영광이는 러시아 출신으로,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제니는 독립운동 후손으로 국적을 얻었고, 유리는 카자흐스탄 출신으로 비자 문제로 곧 귀국해야 했다.
아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가을밤은 깊어갔다. 과자와 음료수를 곁들이며 학교 축제와 앞으로의 계획, 개선점 등을 진지하게 논의했다. 나는 졸음을 참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목사님 이제 주무세요”라며 웃었다. 그렇게 가을 여행의 첫날 밤은 포근하게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우리는 단양의 패러글라이딩장으로 향했다. 영광이, 제니, 유리는 하늘을 날겠다고 나섰고, 서현이는 무섭다며 나와 함께 정상 카페에서 구경했다.
아이들이 하늘로 날아오르자 나는 교관에게 고려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전히 많은 한국인이 고려인을 잘 모른다. 교관은 내 이야기를 듣고 상급 코스로 비행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아이들이 바람 속에서 자유의 냄새를 맡으며 두려움 대신 설렘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바랐다. 눈을 감지 말고, 세상의 주인공이 된 마음으로 10분이라도 마음껏 날기를.
카메라에 담긴 그들의 비행은 세상이 얼마나 작고, 마음이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주는 기록이 되었다. 그들의 교가처럼 하늘을 향해 외쳤다. “므이 드로기에!(우리는 다르다!) 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되잖아!” 그날 아이들의 멋진 비행을 위해 나의 기도는 끝내 멈추지 않았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