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라이프스타일칼럼

‘포도원의 품꾼’ 비유…”나는 몇 시에 초대받았을까?”

안드레아 델 사르토(Andrea del Sarto, 1486–1530) 작 ‘포도원의 품삯꾼’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마 20:10)

계약서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습니다. ‘하루 한 데나리온’ 그것이 그들이 이 일을 시작할 때 약속받았던 내용입니다. 아침 일찍 포도원에 들어선 그들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녁에 받을 한 데나리온을 생각하며 뜨거운 태양과 육신의 고단함을 견뎠을 것입니다.

일을 하다 보니 뒤늦게 합류한 이들이 보였습니다. 마감 거의 직전에 합류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며 ‘늦게 왔나 보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정산이었습니다. 처음에 약속했던 한 데나리온을 받은 것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합류한 일꾼들에게 자신들과 똑같은 임금이 지급되는 광경을 목격한 순간, 그들 안에 분노가 생깁니다.

주인에게 이렇게 항변합니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마 20:12) 항변하는 일꾼들에게는 ‘수고’와 ‘시간’이라는 자격과 권리가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나중 온 자들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근거가 확실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주인의 결정이 불합리했습니다. 저들이 나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기분 나빴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계산법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주인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ChatGPT의 말:

“나는 너에게 잘해 주고 싶은데, 네가 그것을 나쁘게 보느냐?”(마 20:15, 쉬운말 성경) 늦게 온 이들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은 전적으로 주인의 선함과 호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항의하는 이들은 주인의 ‘선함’을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악함’으로 본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생각보다 수용하기 힘든 개념입니다. 우리의 본성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어디까지나 내가 받아야 은혜입니다. 혹시 호의나 선물을 받고는 불공평하다고 그것을 준 사람에게 불만을 제기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내가 좋은 대접을 받을 때면 그저 좋아하면서, 나보다 못한 사람이 나와 똑같은 대접을 받거나 그 이상의 대우를 받으면 언짢습니다.

이 포도원 품꾼 이야기가 나에게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나는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가? 심지어 그 사람에게 자격이 없어도 괜찮은가?

우리는 십자가 옆에 있었던 강도에게 낙원을 약속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합니다. 그런데 만약 내 옆에 있는 웬수 같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그런 은혜를 주신다면, 나는 과연 감동할 수 있을까요? 웬만해서는 그 강도보다 나은 인간일 텐데 말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는 혹시 몇 시에 포도원에 온 사람일까요?

🎧잠깐묵상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0swvJpP26o8?si=csEfmP9vAFxpRYWI

📕 <바쁜 하루, 잠깐묵상> 도서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347539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