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오적’으로 폐간 55년만에 복간 ‘사상계’에 바란다

1953년 장준하 선생이 창간한 「사상계(思想界)」가 지난 봄 복간돼 반년이 흐르고 있다. 1970년 5월호(통권 205호)에 김지하 시인의 담시 ‘오적(五賊)’을 실었다는 이유로 강제 폐간된 지 55년 만이다. 감회가 깊을 수밖에 없다.
「사상계」는 단순한 잡지가 아니었다. 전후 폐허와 군부독재의 질곡 속에서 민주주의, 민족 문제, 통일, 철학과 문화를 두루 논하며 시대의 양심을 지켜온 잡지였다. 깨어 있는 지성이라면 누구나 지면을 통해 나라와 겨레의 길에 대해 목소리를 냈고, 「사상계」는 그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자 나침반이었다. 1970년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와 함께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와 시대정신을 지켜낸 대표적인 잡지였다. 강제 폐간 역시 그 사명을 기꺼이 짊어진 결과였다. 그런 「사상계」가 이번에 ‘문명전환 종합지’를 표방하며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이다.
나는 지난해 연말, 현 편집인 장원 선생으로부터 복간 추진 소식을 처음 들었다. 당시엔 종이 잡지의 한계와 달라진 시대정신을 떠올리며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난 봄, 통권 206호이자 재창간 1호로 나온 묵직한 책을 받아들었을 때,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했다. 장원 선생의 기발한 발상과 집요한 추진력이 이 일을 가능케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복간은 내게도 빚을 덜어낸 듯한 의미가 있다. 「사상계」 폐간의 원인이 된 김지하 시인은 내 사형이기도 했다. 당시 사회운동에 몸담았던 우리 세대는 이 잡지의 복간을 위해 아무 힘도 보태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복간 2호 여름호에 시 몇 편을 싣고, 이번 가을호부터는 편집고문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장원 선생과는 녹색연합, 녹색대학 시절부터 이어진 인연이 있었고, 결국 이 역사적 작업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복간된 「사상계」는 ‘문명전환 종합지’를 표방한다. 생태 위기와 인류세, 민주주의와 평화,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담아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그 지향은 일곱 가지로 정리된다.
* 미학적 흑백예술지 * 생태적 교양종합지 * 아날로그 종이잡지 * 계몽의 계몽 지식지 * 원조 「사상계」 정신 계승 * 미래세대 청년 중심 * 인류세 문명전환 담론지
특히 ‘계몽의 계몽’이라는 문제의식은 새롭다. 과거의 계몽을 다시 성찰하고, 오늘의 현실을 묻는 변증법적 계몽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종이잡지’의 존재 의미를 회복하고, 단순 소비재가 아닌 지속 가능한 생태적 매체로 거듭나려 한다.
현재 정기 구독자는 이미 3,000명을 넘어섰다. 올해는 계간으로 발행하지만 내년부터는 격월간, 이어 월간으로 발전할 계획이다. 두 권을 앞뒤로 엮은 독특한 편집 방식 역시 실험적 시도다. 잡지 생존이 어려운 현실에서 이런 시도가 주목받을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나는 이 잡지가 널리 알려져, 다시금 시대의 등불이자 정론지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1960년대 어둠 속에서 민주주의와 양심을 지켜냈듯이, 오늘날엔 문명전환의 길을 열고, 좌우 진영 대립을 넘어서는 양식 있는 담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야말로 55년 만에 「사상계」가 다시 세상에 나온 참된 의미일 것이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