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점기, 1937년은 고려인들에게 가난했던 조선의 시절보다 더 참혹한 해였다. 동토의 땅을 향해 달리던 강제 이주 열차 안에서 고려인들은 얼어붙은 손을 꼭 잡고 “잊지 말자”는 다짐과 함께 조국을 마음에 새겼다. 서로를 ‘고려인’이라 부르며 정체성을 지켜냈고, 얼어붙은 땅을 개간하며 땀으로 삶을 이어갔다. 비록 오곡의 풍요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나눔과 기쁨은 공유했다. 당시 소수민족이었던 고려인들에겐 조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언어를 지키기엔 한없이 힘없는 이름도 없는 가난한 소수민족에 불과했다. (구)소련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으로 한국어와 전통은 서서히 잊히고 희미하게만 전해졌다. 강제 이주 88년이 지난 지금, 4세대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한국 문화는 여전히 낯설다.

얼마 전,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안산 고려인지원센터 김영숙 센터장이었다. 그는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학생들을 위해 한복을 보내주겠다며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센터에는 10박스가 넘는 한복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눠 주신 한복은 고려인 청소년들에겐 낯선 한국문화와의 만남이며 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는 한국의 긍지를 갖는 것이었다. 뿌리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게 하는 선물이 되었다.
아침부터 교정은 한복 박스를 나르는 모습으로 부산했다.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목사님, 이게 뭐예요?” 서툰 한국어와 러시아어가 뒤섞인 웃음소리 속에서 나는 “추석에 입을 한복”이라 답했다. 내 머릿속엔 이번 추석에 어떤 추억을, 잊지 못할 시간들을 보낼까 머리가 복잡하다. 흥분하며 기분 좋은 두통이다. 아이들에게 나는 무언가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내 어깨가 으쓱거린다.
선생님들과 추석에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을 구했고 내가 생각했던 한국 문화이해를 위한 구상을 이야기했다. 먼저 나는 송편을 만들어보게 하고 싶었다. 팀으로 나눠 송편을 누가 맛있게 이쁘게 만드는지 송편 콘테스트를 해 보기로 했다. 물론 아내에 도움이 필요했지만 들어 줄 거라 믿고 아이디어를 말했다. 더불어 추석에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주기 위해 다양한 게임을 했으면 해서 제기차기와 윷놀이를 하기로 했다. 어쩌면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전통 놀이문화를 경험해 보고 문화를 이해하고 안다면 한국 생활에 더욱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편으로 나는 마음속으로 걱정이 하나 생겼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보는 건 정말 의미가 있지만 송편은 만들어 쪄야 하는데 이것을 학교에서 하기에는 왠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아내에게 “ 이번 추석 전에 송편을 아이들과 만들어보고 싶어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은데…” 말꼬리가 흐려지는 나에게 여지없이 아내는 나의 속 마음을 알아차렸다. 요즘은 떡집에서 바로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송편 속과 반죽을 용량만큼 판다는 소리를 해 주었다. 찌지 않고 먹는다는 말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내의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송편 만들기를 해 보았다는 소리에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았다.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이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에 대부분 시스템은 아내가 도와주었다. 아내가 송편 주문까지 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서야 안심하며 송편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팀만 잘 짜서 아이들에게 골고루 만들어 볼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코로나가 아직도 조심해야 할 단계라 한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이번 추석은 제대로 기분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마스크로 인해 이쁘고 멋진 아이들의 얼굴을 반 이상 가려야 하는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마스크 너머 보이는 이쁜 눈매는 무엇을 가려도 이쁘고 멋있다. 마스크로 가려진 아이들은 여자와 남자로 구분하고 키 순서대로 나눠 좋아하는 색깔과 사이즈를 맞쳐 입기로 했다. 한국어가 서툴기 때문에 한명 한명 한복을 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쉽지 않다. 한복 입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네 명의 선생님이 함께 해 주었다.
먼저 여학생은 입는 순서도 남학생보다 많다. 여학생들은 속치마부터 시작해서 저고리의 고름까지 선생님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그런데도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린다. 하지만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마냥 즐겁다. 아이들은 선생님들에게 집중하며 따라 입는다. 남학생은 내가 도와주기로 했다. 바지를 입는데 허리둘레를 조절하는 것이 어려웠다. 입다가 바지단에 넘어지는 아이들도 보인다. 넘어진 아이를 보며 웃는 소리가 시골 장터 같다. 내친김에 한복을 입었으니 세배도 배워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남자 세배와 여자 세배를 알려주었다. 어느 반이 잘 배웠는지 전교생이 보는 곳에서 세배를 해 보기로 했다. 세배를 너무 진지하게 하고 있다. 한복의 아름다움이 우리 아이들과 너무 잘 어울린다. 한복에는 예의와 정성이 한 올 한 올에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그 멋스러움으로 분명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아이들은 꿈을 꾸고 꿈을 만들고 꿈을 도전하는 보물이 되어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라가 약하고 가난했던 시대를 지나, 이제 대한민국은 문화와 경제의 강국으로 우뚝 섰다. 그 길 위에서 고려인 청소년들은 ‘나는 대한민국입니다’라는 다짐과 함께 뿌리를 찾는다. 모든 것이 낯설지만, 한복을 입는 순간 희미했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디아스포라의 상처를 치유하는 상징이 된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의 아이들은 그날, 추석 한가위처럼 따뜻하고 풍성한 시간을 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