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람세계칼럼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⑩] 영혼의 안식과 창조의 신비-삼위일체의 빛 속으로

필리프 드 샹파뉴(1602–1674)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제작 시기는 1645년에서 1650년경. 이 그림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대표적 상징인 불타는 심장 즉,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왼손에 들린 불타는 심장은 “주님, 당신을 늦게야 사랑하였습니다(Serò te amavi, Domine)”라는 고백을 시각화한 것이며, 오른손의 깃펜과 책은 그의 사상과 저술, 특히 <고백록>을 상징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신앙을 탐구한 영적 대서사시입니다. 어린 시절의 회상에서 시작해 청년기의 방황, 마니교와 철학의 영향, 그리고 회심과 세례, 어머니 모니카와의 이별을 거쳐, 마지막에는 시간과 창조, 삼위일체의 신비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시리즈는 그의 삶과 사상을 따라가며, 인간의 연약함과 은총의 깊이를 동시에 보여줄 것입니다. <편집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개인의 고백으로 시작해, 우주적이고 신학적인 묵상으로 끝을 맺는다. 제11~13권에서 그는 시간과 창조, 삼위일체의 신비를 사유하며 자신의 내적 여정을 마무리한다. 이 마지막 부분은 단순한 개인 회고록을 넘어, 서양 신학과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적 보고(寶庫)다.

시간의 수수께끼

제11권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의 첫 구절-“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를 묵상하면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태초란 무엇인가?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그는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한다. “하느님은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하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시간 자체를 창조하셨다.”

그에게 시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영원 속에 계신다.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경험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영원한 현재’로 존재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또 하나의 유명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시간은 무엇인가? 누군가 묻지 않을 때는 알지만, 설명하려 하면 알 수 없다.” 그는 시간은 외부의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인간 마음의 경험이라고 설명한다. 과거는 기억 속에, 미래는 기대 속에, 현재는 인식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찬송가의 비유를 들어, 이미 부른 구절은 기억되고, 앞으로 부를 구절은 기대되며, 지금 부르는 음은 인식된다고 했다. 결국 시간은 마음의 신비이며, 그 근원은 하느님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창조의 신비

제12권에서 그는 창세기 1장 1~2절을 깊이 해석한다. “하늘과 땅”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영적·물질적 세계를 상징한다. 하늘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영역을, 땅은 혼돈과 변화 속의 물질 세계를 가리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했다”는 구절은 아직 형체를 갖추지 않은 물질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를 문자적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상징적·영적 의미를 탐구한다. 그는 창세기의 ‘빛’을 하느님의 말씀, 즉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로 해석한다. 이렇게 그는 창세기의 구절들을 신학적으로 확장하며,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설명한다.

삼위일체와 창조

제13권에서 그는 창조의 여섯 날과 안식일을 묵상한다. 그는 이를 단순한 시간적 과정이 아니라, 영적 상징으로 이해했다. 빛, 하늘, 땅, 생물의 창조는 모두 하느님의 질서를 드러내는 표징이다.

그는 특히 창조 사역을 삼위일체와 연결한다. 성부는 창조를 계획하고, 성자는 말씀으로 이루며, 성령은 생명을 불어넣는다. “하느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는 구절은 성령의 생명 주시는 능력을 가리킨다. 그는 요한복음 1장-“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를 인용하며, 성자께서 창조의 도구이심을 강조한다.

마지막 안식일에 대한 묵상도 중요하다. 그는 “하느님의 안식”을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창조가 완성되고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 안에서 안식을 얻는 상태로 해석한다. 이는 종말론적 희망을 담고 있으며, 인간의 궁극적 소명은 창조주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의 소명과 찬양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와 삼위일체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인간의 소명은 창조주를 찬양하는 데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이제 알았습니다. 피조물의 목적은 창조주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님, 저를 창조하셨으니, 제가 당신을 찬양하도록 이끄소서.”

그는 또한 인간의 죄와 욕망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변혁될 수 있음을 확신했다. 창조의 목적은 단지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 피조물이 창조주를 사랑하며 교제하는 데 있다.

맺음말

<고백록> 제11~13권은 개인의 삶을 넘어 우주적 신비로 시선을 확장한다. 그는 시간의 수수께끼를 풀려 했고, 창조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해석했으며,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서 피조물의 목적을 발견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결국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이 세상에서 헤맸으나, 주님께서 저를 품으셨습니다. 저의 영혼은 이제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습니다.”

<고백록>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것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죄와 은총, 시간과 영원의 신비를 아우르는 영적 대서사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인류의 마음을 흔들며, 하느님을 향한 내적 여정에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끝)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창조 #삼위일체

윤재석

'조국 근대화의 주역들' 저자, 傳奇叟(이야기꾼), '국민일보' 논설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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